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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370
한자 鄭斗凡
영어음역 Jeong Dubeom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전라남도 여수시
성별
생년 1899년연표보기
몰년 1956년연표보기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정두범(鄭斗凡)은 전라남도 여수에서 태어나 1919년 광주에서 만세 운동에 참가하는 등 독립 운동에 적극 가담한 항일 운동가이다. 1919년 3월 6일 김복현(金福鉉)·김강(金剛)·서정희(徐廷禧) 등은 전라남도 광주 숭일학교(崇一學校) 교사 최병준(崔丙浚), 수피아여학교(須彼亞女學校) 교사 박애순(朴愛順) 등과 3월 10일 광주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시위를 결행하기로 계획하고 독립 선언서를 인쇄하는 등 사전 준비를 진행하였다.

3월 10일 오후 3시 반경, 주도자들은 계획에 따라 광주교(光州橋) 밑 천변에서 수백 명의 군중을 지휘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대를 형성하였다. 농업학교 학생 등 수백 명의 시위 군중이 합세하여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내를 행진하였다. 당시 숭일학교 학생이었던 정두범은 교사인 최병준에게 미리 교부 받은 독립 선언서와 ‘경고아이천만동포(警告我二千萬同胞)’라는 경고문, 독립가(獨立歌) 등을 광주 시내의 시위 군중에게 배포하고 시위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10월 27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5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조선일보와 시대일보 기자로 활동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한국독립당[당수: 김구] 광주시위원장, 전라남도당부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4년 애족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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