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4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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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丁大水 |
영어음역 | Jeong Daesu |
이칭/별칭 | 여숙,용서,충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준옥 |
성격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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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 |
성별 | 남 |
생년 | 1565년(명종 20)![]() |
몰년 | 1599년(선조 32)![]() |
본관 | 창원 |
대표관직 | 수군좌익장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원. 자는 여숙(余淑), 호는 용서(龍西). 사성공(司成公) 정득우(丁得雨)의 8세손이다. 증조부는 정계생, 조부는 통사랑 정순종(丁舜鍾), 아버지는 군수를 역임한 정호인(丁灝仁)이다. 임진왜란 때 함께 참전했던 정철(丁哲)·정린(丁麟)·정춘(丁春)의 종질(從姪)이다.
1580년(선조 13) 아버지를 여읜 정대수는 1588년(선조 21) 무과에 올라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1593년(선조 26) 순초장(巡哨將)으로 명량에서 부상을 당하면서도 큰 공을 세웠다. 이에 이순신 장군의 요청으로 당진현감(唐津縣監)을 특제하였으나 부상이 악화되어 부임치 못하고 여수 자택으로 돌아와 치료 후, 1597년(선조 30) 수군좌익장(水軍左翼將)으로 참전하였다. 1598년(선조 31) 노량해전에서 적탄에 맞아 그 이듬해 순절하였다.
선무원종훈일등공신(宣武原從勳一等功臣)에 책록되었으며, 1847년(헌종 13) 가곡에 사충사(四忠祠)를 세워 향사하였다. 1862년(철종 13) 병조참판에 증직되었다. 1866년(고종 3) 병조판서에 증직되었으며, 충정(忠貞)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후 여수시 웅천동으로 사충사(四忠祠)를 옮겨오면서 이순신 장군을 주향으로 하고, 정씨사충을 병사(倂祀)하여 오충사(五忠詞)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