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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476
한자 鄭沼
영어음역 Jeong So
이칭/별칭 청사(靑莎)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준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미상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본관 연일(延日)

[정의]

조선 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선비.

[가계]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청사(靑莎). 송강 정철의 둘째 형이며, 큰누이는 인종의 귀인(貴人)이며, 둘째 누이는 계림군(桂林君) 이유(李瑠)의 부인이다.

[활동사항]

정소(鄭沼)는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18세에 사마 양시에 합격하고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1478~1543]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러나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에 계림군이 관련되어 그 일족으로서 아버지가 유배당할 때 여수 지역 소라포(召羅浦) 달래도(達來島)에 숨어 살면서 밭을 일구어 마늘을 심고 낚시를 하며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

정소의 생활은 밭을 만들어 마늘을 심고, 바다에 낚시를 드리워 고기를 잡는 일이 전부였다. 이렇게 사는 것을 세속의 어떠한 것보다 더 즐거워하였으며, 동진 장한(張翰)이 정치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고향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난다며 벼슬을 박차고 고향 강동으로 갔던 것보다 더 즐겁다고 스스로 여기고 생활하였다.

[저술 및 작품]

『강남악부』에는 정소의 시 「종산포(種䔉圃)」 한 편이 다음과 같이 전하여 지고 있다.

“마늘 심은 밭/ 그 밭은 소라포에 있다네/ 포구에는 물고기가 있으니/ 이름은 오징어라네/ 긴 다리와 단 물도 밭 주변에서 얻고/ 밭에 마늘 심어 긴 줄기를 뽑았네/ 마늘 밑에 물고기가 걸리니 잡기가 쉬워/ 물고기에 마늘이니 먹는 것도 넉넉하네/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날마다 풍족하니/ 어느 정승과 이 즐거움을 바꾸리/ 세간에서는 아무도 모른다네/ 이 깊은 즐거움을”

[상훈과 추모]

정소가 세상을 뜬 뒤 사림에서 의견을 내어 그가 거쳐했던 곳에다 청사서원(靑莎書院)을 건립했으며, 율곡 이이(李珥)[1536~1584]는 정소의 묘비에다 ‘참으로 모범이 될 만하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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