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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544
한자 東山洞-
영어의미역 Guardian Posts of Dongsan-dong
이칭/별칭 동산동 장승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동산동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준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장승
제작시기/연도 조선시대
높이 1.34m
길이 둘레: 1.01m
소재지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동산동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동산동에 있는 조선시대 돌로 만든 장승.

[개설]

여수에서는 장승을 벅수라 한다. 여수에는 지금도 벅수골이란 지명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30여 개가 보존되어 있다. 진남관(鎭南館) 경내를 비롯하여 동산동 동초등학교 뒷길, 봉산동연등동, 시전동 선소 부근과 화양면 화동, 소라면 현천 등에 흩어져 있으며, 섬 지역에도 돌산 군내리우두리, 화정면 개도 등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벅수는 돌림병이나 외적의 침입을 막아 주고, 땅기운이나 수구가 허한 곳을 다스려 산천을 비보하는 신상(神像)이었다. 이때 음양설에서 남쪽은 양(陽), 북쪽은 음(陰)을 의미하므로 남쪽에 ‘남정중(南正重)’이라 새긴 돌 벅수를 세움으로써 남쪽의 부실한 기운과 화마(火魔)를 진압하고자 하였다.

벅수는 다른 지역에서 경계나 거리를 표시하기 위해서 마을 입구에 세우거나 경내의 청정과 불법의 존엄을 지켜 달라는 뜻에서 사찰 입구에 세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여수 지역의 벅수는 이 지역의 지리적 특성상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가꾸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뜻하지 않은 기후 변화와 왜구들의 노략질로부터 읍락을 수호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제작되었다.

예를 들면, 벅수를 마을 입구나 바다로 나가는 길목에 세워 금줄을 쳐 놓고 그 앞에서 풍농·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굿판을 벌이기도 하였다. 또한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치성도 드렸고, 길 떠난 자식의 무사·무탈과 과거 길을 빌기도 했으며, 병을 낫게 하기 위해 병자의 사주와 이름을 적어 비손도 하였다. 벅수를 신체처럼 여겼던 것이다.

[형태]

남쪽의 벅수는 할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관모(官帽)를 쓰고 도포를 입었으며, 오른손을 밑으로 하고 왼손을 위로 하여 두 손을 마주 잡고 있어 매우 단정하게 보인다. 배 부분에 ‘남정중’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얼굴과 몸체 사이에는 수염을 돋게 표현하였다. 규모는 전체 높이 1.34m, 머리 높이 38㎝, 둘레 1.01m이다.

북쪽의 벅수는 수군의 투구 모양인 벙거지를 머리에 쓰고 있다. 벙거지를 쓴 벅수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시름에 잠긴 듯 두 눈을 내려뜨리고 입을 굳게 다문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단정하고 간결하게 보인다. 두 손은 마주 잡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현황]

명문은 ‘화정(火正)’이라는 글자만 보이고 ‘려(黎)’자는 시멘트 도로 포장에 묻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높이는 1.05m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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