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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635
한자 通信
영어의미역 Communication
분야 정치·경제·사회/과학 기술,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집필자 주석봉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인간의 의사·지식·감정 또는 각종 자료를 포함한 정보를 공간적으로 주고받는 작용이나 현상 또는 그 수단이나 기술의 총칭.

[개설]

넓은 뜻으로는 통신은 인체나 재화(財貨)의 위치적 또는 공간적 이동을 의미하는 운수(transportation)에 대응해서, 서신을 대상으로 하는 우편, 전류나 전파를 매체로 하는 전기 통신, 공간과 수중을 통한 음향 통신, 빛·연기·수기(手旗) 등을 통한 시각 통신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나 좁은 뜻으로는 우편과 전기 통신만을 지칭하기도 한다.

우편은 통보문을 기록한 편지와 엽서 또는 한정된 인쇄물을 운수 기관을 통하여 주고받는 제도이다. 전기 통신은 통신 선로에 흐르는 전류를 매개로 하는 유선 통신과 공간을 통해 전달되는 전파(電波)를 매체로 하는 무선 통신으로 대별하거나, 그 역무(役務) 형태에 따라 전신·전화·데이터 통신·화상 통신(畵像通信) 또는 방송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통적 통신]

전통적으로 한국의 통신은 주로 역참과 봉수라는 두 가지 수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역참 제도는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어 고려시대에 이어지면서 완비를 보게 된 것으로 중앙 정부로부터 각 지방 관서에 이르는 행정 연락망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선시대의 『경국대전』에 의하면 여수 지역의 경우 오수도(獒樹道)에 속한 덕양역(德良驛)이 있었다. 그러나 역참 제도는 1884년(고종 21)에 이르러 신식 우편 제도가 창시됨에 따라 폐지되었다.

봉수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된 전통적인 통신 수단으로서 역참과 더불어 비상 연락망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봉수는 밤에 불로서 알리는 봉(烽) 즉 연봉(燃烽)과 낮에 연기로서 알리는 수(燧) 즉 번수(燔燧)를 합친 말이다.

전국의 봉수망은 주요 간선 요로를 5로로 나누어 직봉이라고 불렀으며 전라남도 역내에 설치된 봉수대는 29개소, 여수 지방에는 돌산도 봉수대[여수시 돌산읍 둔전리], 백야곶 봉수대[여수시 화정면 서촌리], 진례산 봉수대[여수시 상암동], 봉화산 봉수대[여수시 미평동] 등 4개소가 있었다. 그러나 봉수 제도 역시 1895년 전라좌수영이 폐영됨에 따라 폐지되었다.

역참과 봉수 외에 여수 지역에서 한 때 중요하게 사용되었던 통신 수단으로는 연을 들 수 있다. 특히 ‘이충무공 전술비연’은 통신 및 암호 수단으로 사용했던 일종의 신호연이었다. 전략상의 통신 및 암호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전술신호연은 눈·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420여 년 전에는 수만 명의 생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통신 수단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개화기 및 일제강점기의 통신]

1880년대에 접어들면서 조선에서도 서구식 통신 기술과 제도를 도입하게 됨에 따라 역참과 봉수를 주요 수단으로 운영되던 기존의 통신 제도가 폐지되었으며, 대신 우편·전신·전화 등 새로운 통신 수단이 등장하게 되어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도 그 영향을 받게 되었다.

1. 우편국의 발족

1905년 6월 6일 여수지방우편국이 여수임시우편소를 인수하면서 여수 지역의 본격적인 우편 업무를 개시하였으며 주로 서신·엽서·인쇄물·서류 등의 집배 및 등기, 배달 증명 등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였다. 당시 우편국은 시내와 시외로 구분하여 시내는 1일 2~3회로, 시외와 부근의 마을에는 격일로, 원거리는 3일 또는 4일마다 1회로 배달하였으며 일부는 청부배달제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6년 11월 여수임시우편소가 폐지되고 일본 체신성 관할의 여수우편취급소가 설치되었다.

2. 해저전선의 개통

1884년 2월 28일 일본과 부산을 잇는 국제 전신 전화가 처음으로 개설된 이후, 1885년 5월 한국에서 두 번째로 전라남도 여수 지역인 거문도에 주둔한 영국군에 의해 거문도와 중국 상해를 잇는 해저 전선이 개설되었다. 그러나 1887년 2월 27일 영국군의 철수로 그 해저 전선은 철폐되었다. 이후 1904년 1월에는 일본 사세보(傞世保)-거문도-중국 다롄[大連]을 잇는 해저 전선이 부설되었고 같은 해 8월 11일에는 거문도-철원 간에 항장 4,019㎞의 해저 전선이 부설되었다. 또한 같은 해 12월에는 거문도-제주 간의 해저 전선이 부설됨으로써 거문도는 통신망의 요충지가 되었다.

3. 전신의 신설

1908년 12월부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도 전신 사무 취급이 개시됨과 더불어 여수우편취급소의 명칭이 여수우편전신취급소로 개칭되었다. 당시 여수 지역의 전신은 순천을 중계국으로 하여 전화기에 의한 전신 송수신을 하여 소통량이 적을 뿐만 아니라 부정확하였다. 그래서 1909년 2월에는 모르스 전화기에 의한 전신 업무로 바뀌게 되었다. 이후 1921년 6월에는 중계국을 통한 시간 지연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부산과 직통선을 신설하고 동시에 광주와 목포국을 순천과 접속하게 함으로써 각 방면에서 신속한 전신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4. 전화의 등장

1910년 10월 여수우편전신취급소가 여수우편국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1920년 2월 1일부터 시내 전화가 개통되었으며 가입자 수는 109대에 이르렀다. 또한 1922년 2월에는 부산 지역과의 전화가 개통되었으며 1938년에는 여수-순천 간 전화선을 증설하게 되었다.

[해방 이후의 통신]

1948년 10월 20일 ‘여순 사건’으로 여수우체국 청사가 소실되고 전신, 전화 등 중요시설을 비롯하여 케이블선로 및 기자재가 대부분 파손되어 통신 기능이 일시 마비되었다. 이후 복구와 함께 1949년 10월 고소동에 청사를 착공하여 1950년 5월에 완공 이전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시설이 파괴되었다.

1952년 모든 시설을 완비하여 가입대수 380대로 전화 업무를 개설·운영하게 되었다. 1957년 6월 21일에는 자석식 200회선을 증설하였으며 1958년 6월 9일에는 자석식 800회선을 공전식으로 교체하였다. 1962년에는 도서무선전신전화분실이 설치되어 2월 14일 안도를 시작으로 9월 30일에는 거문도까지 도서 전화 업무 구역이 확대되었으며 10월 13일에는 국제 전신 업무도 시작하였다.

1968년 12월 1일 서교동에 여수전신전화국을 완공함과 더불어 12월 25일부터 ST형 자동식 2,500회선으로 업무를 개시함으로서 여수 지방에 최초의 다이얼 전화가 이용되었다. 1976년 10월 9일에는 여수-서울 간 장거리 자동 전화가 개통되었다. 1986년에는 국산 전전자식 교환기인 TDX의 개발로 국내 통신 서비스의 질적 수준이 급진전됨으로써 가입 전화 요금을 대폭 인하하는 동기를 제공하여 1가구 1대 전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1989년 7월에는 한국이동통신(주) 여수대리점이 처음으로 생겨 이동 통신 업무도 시작되었다.

[현황]

2006년 현재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전화 가입 현황은 업무용 37,102회선, 사업용 2,290회선, 주택용 86,845회선, 공중전화 1,106대이며 전화국은 3개소가 있다. 이동 통신 회사로는 KTF, SK텔레콤, LG텔레콤 등의 대리점 등이 있으며, 인터넷 통신 업체로는 KT, LG파워콤, 전남동부방송 등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0.12.22 통신 하나로토신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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