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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1015
한자 晉州姜氏
영어의미역 Jinju Gang Clan
이칭/별칭 진양강씨(晉陽姜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대포리
집필자 김준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대포리
집성촌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봉전리 봉전마을
입향시기/연도 1400년대
성씨시조 강이식(姜以式)
입향시조 강주호(姜柱浩)|강원(姜沅)

[정의]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주호와 강원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연원]

진주강씨(晉州姜氏)는 진양강씨(晉陽姜氏)로 부르기도 한다.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姜以式)의 후손인 강진이 신라 헌강왕 때 태중대부판내의령(太中大夫判內議令)으로 재임 중에 진양후(晉陽侯)로 봉해지면서 본관을 진주로 하게 되었다. 진주강씨는 크게 은열공파(殷烈公派), 박사공파(博士公派), 소감공파(少監公派), 인헌공파(仁憲公派), 시중공파(侍仲公派)로 대별된다. 이 중 박사공파는 강계용(姜啓庸)의 손자 강사첨(姜師瞻)이 어사를 지낸 까닭으로 어사공파라고도 하며, 시중공파는 손자 강원로(姜元老)가 관서대장군을 지낸 까닭에 관서대장군파(關西大將軍派)라고도 한다.

[입향경위]

진주강씨가 여수에 처음으로 입향한 때는 1400년대로 추정한다. 진주에서 살던 강주호(姜柱浩)가 태종 때 일가족을 데리고 여수시 소라면 대포리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대제학(大提學) 강회백(姜淮伯)의 후손이며 사과(司果) 강극공(姜克恭)의 아들로서 창녕군수를 거쳐 순천도호부사(順天都護府使)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지낸 강원(姜沅)은 임진왜란 때 여수 의암산에 정착했다. 또, 은열공 강민첨의 20세손인 강자해(姜自海)는 1600년대에 경상남도 하동에서 여수시 상암동 진례마을로 입향했다.

은열공 강민첨 12세손 강창덕의 아들로 가선(嘉善)의 수직(壽職)을 받은 강칠봉(姜七鳳)이 효종 때 진주에서 만덕동 오천마을로 입향했다. 정확한 입향 사유는 알 수 없지만 은열공 10세손 강호대(姜虎大)의 둘째 아들 강현(姜玹)의 후손들이 인근 초도와 여수 등지에 거주하는 것으로 보아 생활 터전을 찾아 친족 등이 거주하고 있는 근처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1750년대 해남에서 여수에 입향한 강발(姜潑)의 7세손으로 1893년 학용동 학용마을에 이주 정착한 강인회(姜仁會)는 어사공 강사첨의 23세손이다. 정조 때는 강인영(姜仁永)이 병영에서 광양을 거쳐 소라면 현천리 마륜마을로, 강계선(姜桂仙)이 순천에서 소라면 사곡리로 이주했다. 또, 강호회(姜虎會)가 황해도 해주에서 살다가 율촌면 송도(松島)로 난을 피해 들어와 살았다.

[현황]

현재 여수시 상암동 진례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진주강씨는 은열공 강민첨의 후손들이 많다. 그러나 학동, 월하동 신촌, 중흥동 삼간도마을, 적량동 상적마을, 낙포동 상촌마을, 신덕동 덕대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진주강씨는 대부분 어사공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강칠봉의 후손은 화양면 오천, 강원의 후손은 삼일동, 강인영의 후손은 소라면 마륜마을, 강계선의 후손은 사곡마을 중심으로 살고 있다. 또, 송도진주강씨들은 강호회의 후손들이다. 화양면 나진마을에도 진주강씨들이 많다. 율촌면 봉전리 봉전마을은 진주강씨 집성촌이다. 화양면 이천리 오천마을진주강씨가 50%나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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