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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1248
한자 靑銅器時代
영어의미역 Bronze 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이동희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신석기시대를 이어 나타나는 청동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개설]

청동기시대는 덴마크의 톰센(C.J.Thomsen)이 구분한 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로 구성된 삼시대 체계[three age system] 중의 한 시대로, 신대륙에서는 사용되지 않으나 구대륙에서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시대 개념이다. 광석에서 구리를 추출한 후 주석·아연·납 등 몇 가지 다른 금속과 배합하여 청동기를 주조하는 것은 고도의 숙련된 기술과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청동기시대에는 단순히 석기만을 사용하던 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직업의 전문화·교역의 발달·계층사회의 발전을 가져오는 혁신적인 변화가 있게 된다.

한국의 청동기시대는 대체로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간단한 소형 제품을 만든 동검(銅劍) 이전 시기와 본격적으로 단검(短劍) 등의 각종 무기와 공구(工具) 등을 본격적으로 제작해 사용하던 동검을 표지(標識)로 하는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동검 이전 시기에 해당되는 예로서 요령(遼寧) 여대시(旅大市) 쌍타자(双砣子) 3기, 평안북도 의주 신암리(新岩里) 하층의 단추와 칼 등이 있다. 연대는 B.C. 2,000년대 후반으로 추정되며, 이는 곧 한국 청동기시대의 상한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 단검이 보급되는 시기는 다시 비파형(琵琶形) 동검 시기와 세형(細形) 동검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또는 비파형 동검 시기, 중간형(中間形) 동검 시기, 세형 동검 시기, 변형 동검 시기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청동기와 함께 철기가 사용되는 세형 동검 시기 이후는 청동기시대라기보다는 초기철기시대 혹은 철기시대로 보아야 한다. 중국 전국계(戰國系)의 철기 문화가 한반도에 분명히 나타나는 것은 BC 300년경이므로 철기시대의 상한 또는 청동기시대의 하한은 B.C. 300년 또는 그 이전으로 볼 수 있다. 여수시의 청동기시대는 생활 유적과 무덤 유적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생활 유적]

여수 지역에서 생활 유적은 주거지로 대표된다. 주거지는 화장동화양면 화동리에서 송국리형이 확인된 바 있다. 이 주거지들은 평면 형태가 원형이거나 말각방형(抹角方形)이다. 특히, 원형 주거지는 중앙에 타원형의 구덩이가 있으며, 그 주위에 기둥 구멍이 2~4개가 있는 형식이다.

[무덤 유적]

여수 지역에서 무덤 유적은 고인돌로 대표된다. 여수 지역 전체 고인돌의 수는 2014년 현재 217개군 1,152기에 달한다.

여수 지역 고인돌에서는 우리나라 고인돌에서는 드물게 비파형 동검과 옥이 많이 출토된 것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적량동에서는 비파형 동검이, 평여동에서는 옥이 각각 중심 유물로 발굴되어 지금까지 대부분의 고인돌에서 중심이 된 부장품이 석검이나 석촉 등이었던 것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는 우리나라 고인돌 연구뿐만 아니라 청동기시대 문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

대표적인 고인돌인 평여동 고인돌은 1989년 전남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총 29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어 25기의 석실이 확인되었다. 총 3개의 군으로 이루어진 이 고인돌은 각 군별로 구조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군에서는 장방형 적석을 구획한 고인돌을 중심으로 간단한 석실들이 주위에 배치되어 있었다.

다군 3호는 판석편들로 타원형의 적석을 구획하였으며, 2호는 적석이 없이 나타나고 있어 같은 군집 지역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 3개의 군집 지역에서 거대한 상석을 가진 남방식의 구조가 1기씩 존재해 있었다. 유물은 청동검 1점, 유구석부·대패날·석촉 등의 석기류 5점, 옥류 350점 등 총 356점이 출토되었으며, 석검은 1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 고인돌들은 부장품으로 볼 때 옥과 밀접히 관련된 집단의 피장자 무덤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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