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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군청 전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1395
한자 麗水郡廳 全燒
영어의미역 Yeosu-gun Office Fir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화재사건
발생(시작)연도/일시 1919년 9월 15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19년 9월 17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여수군청

[정의]

1919년 여수군청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

[역사적 배경]

여수군청은 간숙당이라는 건물로, 1479년(성종 10)에 전라좌수영성과 같이 지어졌다. 역대 수군절도사들의 시무청인 운주헌으로 불려오다가, 1897년 여수군이 설치되면서 여수군청으로 사용되어온 건물이었다.

위치는 전라좌수영 역내 지금의 군자동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2.314m²의 부지에 결승당과 완경루 등의 두 부속 건물이 있었다. 내삼문과 외삼문으로 둘러싸인 호화로운 건물로서 웅대하면서도 섬세하여 진남관, 진남문과 더불어 여수 삼대 건축물의 하나로 손꼽혔다.

[발단]

여수군청 전소 사건 당시 군수는 안창선(安昌善)이었고, 숙직원은 연진호(延振鎬)였다. 숙직원이 밤에 청사를 비워놓고 술집에 간 사이 야근원(성명 미상)이 촛불을 켜들고 창고에서 서류를 찾다가 실화해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경과]

1919년 9월 15일 밤 1시경 천지를 뒤흔드는 폭죽 소리와 함께 군청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본관을 비롯하여 부속 건물과 내외삼문이 모두 불탔고, 이로 인하여 모든 것이 회진되어 상당 기간 군정이 공백을 빚기도 하였다.

당시 여수에는 일본인으로 구성된 소방조가 있어 빈약한 수동식 펌프를 끌어다 진화를 해보았으나 역부족이었다. 당시는 8월로 더위가 한참이었고, 거대한 목조건물에 불이 붙었으니 불길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본관·결승당·완경루·내외삼문에 이르기까지 불은 3일간이나 계속해서 진행되었고, 지역 주민들은 그저 불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 군청이 불타면서 벌겋게 달은 기왓장과 불덩어리가 바람에 날려 아무 데나 떨어지는 바람에, 주민들은 멍석을 물에 적셔 지붕을 덮음으로써 자기 집을 보호해야 했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6.03.25 내용 수정 1919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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