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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1914
한자 古突山城址
영어의미역 Godolsan Mountain Fortress Site
이칭/별칭 돌산포 만호진성,돌산포성,고돌산진,돌산포영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 고내마을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성곽|산성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1488년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 고내마을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 고내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진성지(鎭城址).

[개설]

고돌산성이 있던 돌산포만호진은 배후에 있는 수박등을 의지하여 산 위에서부터 바닷가의 완만한 경사진 곳을 이용하여 성곽을 두르고 서문, 북문, 수구문을 냈는데, 북쪽 고외마을로 통하는 길목에 북문을 내고, 남문과 수구문 밖이 바로 바다로 연결되어 그곳에 굴강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성(城)과 굴강의 옛 모습을 찾기 힘들다.

『성종실록』에는 고돌산성에 대해 남향에 둘레가 1,313척, 높이가 13척이며, 성 안에 우물 3개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돌산진진지급사례(古突山鎭鎭誌及事例)」(1611년)에 성첩의 둘레가 포척으로 787보, 여첩이 760좌, 좌총혈이 695처, 천정(泉井) 5처, 민호가 성안에 82호, 성밖에 62호, 동헌 4칸 등 총 53칸 11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변천]

고돌산성은 『한국지명총람』에서 고돌산진·돌산포성·돌산포영 등으로 불리고 있다. 『승평지(昇平志)』에는 ‘옛날 수군만호가 있다가 중종 때 이를 폐하고 권관(權管)을 두었으며, 그후 소모진(召募鎭)을 설치하여 별장(別將)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고돌산성용주리의 돌산포 만호진을 중심으로 한 성으로 좌수영보다 9년이 늦은 1488년(성종 19) 돌산포에 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522년(중종 17)에는 여수석보(麗水石堡)로서의 임무를 다하다가 1523년(중종 18) 돌산포 방답첨사가 설진될 때 돌산포 만호진을 혁파하고 소모진으로 고쳐 좌수영 소속이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옛 돌산포진을 새로운 수군진으로 정비하면서 고돌산진으로 고쳐 부름에 따라 고돌산성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위치]

여수반도는 ‘X’자 형태를 이루며, 특히 남쪽과 북쪽은 비교적 깊은 만(灣)을 형성하고 있다. 여수반도의 남쪽으로는 크고 작은 섬들이 자리한다. 고돌산성지여수반도의 남쪽 해안가에 형성된 입구에 위치하며, 고내마을을 중심으로 마을 뒷산 중복까지 포함하고 있다.

여수반도는 동쪽으로 남해, 서쪽으로 고흥을 사이에 둔 광양만과 순천만 사이에 위치한 해상 교통의 요지이다. 직접적으로 여수반도를 통하거나 순천만과 광양만을 통해 내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하는 곳이다. 특히, 광양만은 섬진강을 통해 내륙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는 교통상 좋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현황]

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축조되었으나, 외성은 지금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의 고돌산성은 주로 내성을 의미한다. 석축성이나 현재 남아 있는 성벽 중에는 막돌로 쌓은 석축 부분이 있고, 산 중턱에는 토석 혼축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성지 안에서는 유물이 수습되지 않았다. 성 안에 많은 민가가 들어서고 대부분의 평지가 경작지로 바뀌어 지형이 심하게 변화된 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고돌산성돌산도 방답진이 설진되기 전에는 가막만을 사이에 두고 돌산도와 대안을 이루면서 적진 전방초소로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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