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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1984
한자 水牆址
영어의미역 Wall Site against Tide of Yeosuha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중앙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조선 후기
소재지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중앙동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중앙동 선창에 있었던 돌로 쌓아 선박을 대피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만(灣)처럼 굽어 있는 구조물의 터.

[개설]

수장은 1592년 조선 후기 숙종 때 수사 윤하가 여수항의 큰 물결을 막을 목적으로 쌓은 구조물이다. 해안 가까이의 바닷속에 돌을 쌓아 만들었다.

[변천]

『난중일기』 임진년 2월 1일에 “出船滄 點擇可用板子 時水塲內鯈魚雲集[선창에 나가서 쓸 만한 판자를 고르는데 때마침 수장에 숭어 떼가 몰려들었다].” 라고 쓰여있다. 이를 통해 수장이 1592년에 이미 전라좌수영 내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호좌수영지』에 “선창은 남문 밖에 있으니 1678년(숙종 4)에 절도사 김세기(金世器)가 성본 오주를 세워 전선(戰船)이 물살에 더 밀리지 않도록 단단히 묶었다.”, “1693년에 절도사 윤하(尹河)가 계청하여 승군을 징발하여 돌을 쌓아 풍랑을 막아 배가 파도에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 길이가 200발(把)이다.” 또 “계사(1713년)에 절도사 김등이 석성(石城)을 서쪽에 쌓아 허술함을 막았다.”라고 하였다. 1924년에 수장 터 안쪽이 매립되었지만, 시가지가 조성될 당시에도 수장은 그대로 남아서 1930년대에도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있었다.

[위치]

위치를 비정해보면 여수시 중앙동 774번지 상가 뒤편 골목길로 새 주소인 ‘중앙파출소길’과 ‘진어물길’이 교차하는 골목길이다.

[현황]

1924년 매립된 수장 안에 십자모양의 신작로를 만들었다. 대략 1917년 여수 해안선과 비교하면 당시까지 존재하던 수장의 끝은 중앙동 주민센터 근처까지 뻗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개화하면서 이 지역의 해안선과 개펄 노구 등이 많이 변화되었다. 이로보아 전라좌수영의 수장이 다소 축소된 것으로 판단된다. 전라좌수영의 수장은 1847년까지도 ‘반월형’이었다. 1910년대에 해안선의 매립으로 상당 부분이 축소되어 보인다. 1924년 매립된 수장의 규모는 다른 수군진의 수장과 비교하여 작지 않은 규모였다고 할 것이다. 난중일기 임진년에는 ‘수장(水場)’으로 표기하다가 19세기 말에는 ‘수장(水藏)’으로 표기되었다. 매립공사 당시 해안선이 매립되면서 수장 터가 그대로 시가지가 되었다. 지금의 여수시 중앙동로터리의 둥글게 생긴 도로 가장자리가 당시의 수장의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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