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22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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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州吳氏 |
영어의미역 | Haeju 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취적리 신산마을 |
집필자 | 김준옥 |
세거지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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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신산리 신산마을 |
입향시기/연도 | 고려 말|18세기 |
성씨시조 | 오인유 |
입향시조 | 오흔인|오시창 |
오인유를 시조로 하고 오흔인과 오시창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해주오씨는 오인유(吳仁裕)와 오현보(吳賢輔)를 각각 시조로 삼은 두 경우가 있다. 오인유는 본래 중국 송나라 학사로 984년 고려에 들어와 검교군기감을 역임하였는데, 황해도 해주에 정착하여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해주를 본관으로 삼고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또, 오현보는 고려 고종 때 거란을 토벌한 공으로 해주군(海州君)에 봉해진 후 그의 후손들이 역시 해주를 본관으로 삼고 세계를 이어왔다. 두 인물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역사적 사실 관계가 불확실해 알 수 없다. 여수에 입향한 해주오씨들은 오인유의 후손들이다.
고려 말 한림학사를 지낸 오흔인(吳欣仁)이 아들 형제를 데리고 여수현령으로 부임한 직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그 자리를 물러나 율촌면 조화리에 거주하게 된다. 오흔인의 후손 오치신(吳致臣)이 1440년경에 율촌면 신산리 신산마을로 이주한 이래 현재 입향조로부터 18세손이 살고 있다. 또 17세기 말에 충무위부사정(忠武衛副司正) 오시창(吳時昌)[1621~1684)]이 청양에서 우거하다 당쟁을 피해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 마산마을로 옮겨와 자리를 잡게 됨으로써 그 후손들이 이 마을에서 대를 잇고 있다.
현재까지 여수에서 해주오씨들이 가장 많이 사는 마을은 율촌면 신산리 신산마을과 후산마을, 덕산마을, 소라면 복산리이다. 특히, 마산마을에는 주민 60% 정도가 해주오씨들이다. 시조 오인유의 18세손인 오시창이 마산마을에 입향한 이후 20세 오승태(吳承泰)의 후손들은 고흥으로 분파되었고, 22세손 오명구(吳命耈)의 후손들은 돌산읍 둔전리로 분파되었다.
율촌면 신산리 신산마을에 전향재(筌香齋)가 있다. 전향재는 입향선조 오흔인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해주오씨 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