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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민사 중수 상량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3031
한자 忠愍祠重修上樑文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 1808 외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상량문
관련 인물 이순신, 안홍국, 조진화
용도 충민사의 중수 시 상량문
발급자 조진화
문화재 지정번호 해당사항 없음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에 있는 충민사를 중수 할 때 쓴 조선 후기 상량문.

[개설]

충민사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신 최초의 사액사당이다. 충민사 중수 상량문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의 사당을 중수하는 이유를 밝히고 한산도 노량 해전에 함께 나아가 싸웠던 충무공 이순신과 보성군수 안홍국을 모심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사당이 피폐해짐을 아쉬워하면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적었다. 영읍(營邑)이 서로 도와 계획을 세운 것은 분명 의기에서 나온 생각일 것이라는 것과 주초(柱礎)는 복원되어 오가(五架)의 제도가 모두 갖추어지게 되었음을 알리고 상량을 올리는데 도움을 주면서 동, 서, 남, 북, 위, 아래에 차례대로 아름다운 칭송을 읊었다. 상량을 한 뒤 길이 붕괴되지 않고 추락하지 않을 것이며 사방 팔역(八域)에서 우러러보고 쳐다보고 묘당(廟堂)에 흠향한 것은 정성스런 사랑일 것이며 인물은 높인 것은 그 도를 본받자는 것이라는 상량문이다.

[구성/내용]

충민사중수상량문(忠愍祠重修上樑文)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살펴보건대 충신(忠臣)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풍성(風聲)은 영원할 것이며 원사(元祀)에서 조종(祖宗)을 생각하며 제사를 올린 사당은 매우 편안할 것이다. 만고(萬古)에 전해질 강상(綱常)으로 둘 사이의 원기(元氣)일 것이다. 늠름(凜凜)한 수정묘(壽亭廟)를 홀로 붙들었으며 열렬(烈烈)한 문산사(文山祠)는 산만하지 않도다.

제사 올린 의전(儀典)에서도 그렇지만 백성들이 본받을 바도 될 것이다. 승평부(昇平)의 숭보(崇報)하는 곳이 되길 원하니 곧 충무공의 신주(神主)를 모신 곳이다. 충의(忠義)는 마치 하늘의 해와 별처럼 빛나 오늘날까지도 그 풍문은 전해져 알게 하고 정령(精靈)은 마치 땅에서 솟는 샘물처럼 마르지 않아 모든 제례(祭禮)를 돌보며 정성을 다해 제사를 올리네. 한산도 노량 전투에 함께 나아가 싸웠던 충무공 이순신과 보성군수 안홍국도 따라서 함께 모셨네. 지략(智略)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지만 병가(兵家)에서는 인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샘물처럼 비장(悲壯)을 격동(激動)시킨 소리는 완연(宛然)히 충혼의백(忠魂毅魄)에 남아있고 조두(俎豆)로서 질서정연한 제례행사는 영원히 지사(志士)·어진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이곳은 충성을 표하는 터전이 지만 문득 팔인(八人)에게 재앙을 초래하는 한탄도 있다. 위 기둥 아래 집채 절반이 헐어 무너질 지경이고 서쪽 행랑 한 쪽 계단은 초토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가련하다. 아! 공(公)의 덕(德)을 기린 비석이 잊히지 않을까?

여기를 오노라면 탄식이 일지 않을 수 없다. 통제영을 지키면서 남복(南服)을 진압하였고 일방(一方) 한폐적(翰蔽績)을 지내면서 선우(單于)를 당해내었다. 아! 칠치(柒齒)는 나라의 원수지만 적심(赤心)은 오직 공에게 굴복하였다. 천지도 노하였고 전사는 피를 흘렸다.

맹분(孟賁)·하육(夏育) 같은 장수도 용기를 잃었고 장량(張良)·진평(陳平) 같은 지사(智士)도 지략을 잃었다. 그 때 순절하여 몸을 던진 것은 바다와 산에 맹세한 기세였으며 홀로 군사를 정돈하여 다급한 전쟁터로 달려간 것은 하늘을 깁고 햇빛을 목욕시키는 정성이었다.

눈물을 뿌리며 온교(溫嶠)의 배에 오르고 마음속으로 맹세하며 사아(士雅)의 노를 저었다.

벽루(壁壘)의 진한 채색은 동해 바다 삼천리를 둘렀고 사직의 편안함은 남추(南酋) 백만 군졸을 막아내었다. 대저 대의는 일개 신하일 뿐이지만 사율(師律)이 어찌 5,6대에서 멈추랴?

기세는 마치 썩고 마른 것을 꺾는 듯 하였고 화살 화살촉 남긴 것을 번거롭게 여기지 않았다. 장군은 하늘에서 내리신 분이라 말할 수 있고 군사를 다스린 것은 마치 우레 같은 위엄을 지녔다. 나라는 오늘날까지도 살아 있고 홀로 책임진 공(功)은 한이 없다.

바다 같은 시원한 분위기는 충간(忠肝)과 의담(義膽)의 기운이며 새집처럼 초라한 것은 요요(妖腰)와 난령(亂領)의 혼백이다. 날선 칼날은 밟을 수 있어도 뜻은 빼앗기 어렵고 붉은 탄환이 교차해도 눈을 끔쩍도 하지 않았다. 이(李)·김(金)은 기이한 인물이라고 칭찬하고 진린(陳璘)도 제도(制度) 변화 대응에 감탄한다. 기산(祁山)의 장성(將星)은 문득 죽어가고 하란(賀蘭)의 진운(陣雲)은 맑지가 않다. 문충공(文忠公)의 기적비는 해와 달처럼 밝게 게시될 것이며 선무공(宣武公)의 늑명권(勒名券)은 산하처럼 영원히 전해지리라. 보도(寶刀)와 거북선의 유전(遺傳)은 소강남(小江南)의 지휘를 의리로 격동시키고 금장(金章)과 호부(虎符)의 총석(寵錫)은 명나라의 제독(提督)보다 이름이 높았다. 존화양이(尊華攘夷)의 의리는 열릴 것이며 포충선절(褒忠蘚節)의 은전은 잘 닦이었다.

서달(徐達)의 오래된 명문으로 상충정무(尙忠旌武)의 표를 세우고 한후(漢候)의 아름다운 시호(諡號)는 위신봉상(危身奉上)의 정성을 아름답게 하였다. 양추(陽秋)의 대의는 다시 밝아지지만 단청(丹靑)의 유사(遺祠)는 박락(剝落)해져갔다. 실로 충량의렬(忠亮毅烈)은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어찌 베어버리고 사라지게 해서 자취도 없게 만들 수 있겠는가?

영읍(營邑)이 서로 도와 계획을 세운 것은 분명 의기에서 나온 생각일 것이며 묘무(廟) 숭봉(崇奉)할 곳이 되었으니 정상(精爽)도 강림할 수 있으리라. 향화(香火)를 받들자 단확(丹)은 더욱 새로워 사방에서 덕을 살펴보고 서로 기뻐할 것이며 회진(灰塵)을 쓸어내자 주초(柱礎)는 복원되어 오가(五架)의 제도가 모두 갖추어지게 되었다. 아! 영령(英靈)은 변함없이 존재할 것이니 대저 창건이든 중수든 역시 때가 있는가 보다. 오직 향의(享儀)는 영세에 전해질 것이며 이 세천(歲薦)은 선경(先庚)에 적합하리라. 상량을 올리는데 도움을 주면서 아름다운 칭송을 펼쳐보노라.

여기영차 동쪽으로 들보를 던져라.

흐르는 강물 만 굽이는 해문(海門)으로 통하네. 평생에 나라를 보호하는 정영(淨嶸)한 기는 천고의 긴 하늘에 무지개로 뻗으리라.

여기영차 남쪽으로 들보를 던져라.

맑지 않는 흉추(凶醜)들을 신하들이 부끄럽게 여겼네. 장사의 마음은 바다마저 삼키고자 하니 보루는 바다 앞 13척 배를 묶었네.

여기영차 서쪽으로 들보를 던져라.

바닷길은 망망하여 해가 오히려 낮게 보이네. 재배(再拜)를 올린 용만(龍灣)이 어디던가?

조정(朝廷)에 올린 첩서(捷書)는 오운(五雲)처럼 희미하네.

여기영차 북쪽으로 들보를 던져라.

한밤중 굽이친 장강(長江)에 요분이 잠잠하구나. 드디어 온 나라가 윤상(倫常)을 알게 하였으니 형형(炯炯)한 일심은 마치 북극을 향해 읍(揖)하는 것 같네.

여기영차 위쪽으로 들보를 던져라

고요하고 넓은 가을 하늘에 기운이 상쾌하구나. 생각하노라면 영풍(英風)은 마치 새벽을 거른 것 같고 바다 구름에서 멀리 일월같이 밝은 빛을 바라보네.

여기영차 아래로 들보를 던져라.

제사를 올리기 위해 매년 깨끗이 청소를 하네. 공업(功業)은 화려하게 청사(靑史)에 드리웠으니 우리나라 충절(忠節)은 오직 공일 뿐이리라. 바라건대 상량을 한 뒤 만년이 되도록 전해져 붕괴되지 않고 추락하지 않을 것이며 사방 팔역(八域)에서 우러러보고 쳐다보리라.

묘당(廟堂)에 흠향한 것은 정성스런 사랑일 것이며 인물은 높인 것은 그 도를 본받자는 것이리라. 이는 숭덕상현(崇德象賢)의 의리이니 누가 친상사장(親上事長)의 마음이 없을 것인가 한 나라의 흠숭(欽崇)은 모두 추앙의 의미가 간절하며 천추에 전해진 제사는 향사(享祀)의 의식에 허물이 없으리라.

숭정 기원후 세번째 경오 10월 일[순조 11년 경오, 서기 1810년]

지부 조진화(趙晋和) 씀

[의의와 평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의 사당을 중수하는 이유를 알고 충무공 이순신과 보성군수 안홍국을 모시고 싶어 하는 지역민들의 추모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전형적인 상량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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