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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3063
한자 金漢昇
이칭/별칭 金子漢奎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기업인
출신지 여수시
성별
생년 1869년연표보기
대표경력 중추원참의

[정의]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를 지낸 일제강점기의 기업인.

[개설]

김한승여수군 출신으로 대한제국 말기에 여수군 주사 등 하급 관리직을 지냈으나, 이후 지역 유지로서의 이력이 더 두드러진다. 1910년부터 주요 공직을 거쳤으며 1920년에는 전라남도 도평의원에 선출되어 세 차례 연임했다. 조선수산회 이사로 여수자동차 중역,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다. 여수군 주사 재직 때 사재를 기부하여 여수 지역에 사립 경명학교(鏡明學校)를 설립하고, 여수간이수산학교 설립에도 물심양면으로 공헌하였다.

[활동사항]

김한승(金漢昇)[일본식 이름: 金子漢奎]은 전라남도 여수군 출신이다. 1896년 여수군 향시배행향유사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1910년에 여수지방 금융조합장을 거쳐 1911년에는 군참사에 올랐고, 1915년에 여수조방조 부조두가 되었다. 전남산림회 부회장 등의 공직을 거쳤으며 1920년에는 전라남도 도평의원에 선출되어 세 차례 연임했다. 1923년 3월에는 조선민립대학기성회 중앙부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여수어업조합을 담당하고 조선수산회 이사로 중임하는 등 이 지역 어업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여수자동차 중역을 맡는 등 여러 분야의 기업에서도 활동한 여수 지역의 대표적인 부호였다. 『조선인사흥신록』에는 "거의 공직으로 시종일관한 보기 드문 독행지사"라는 인물평이 실려 있다.

1932년에 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다. 중추원 참의로 재직 중이던 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 총독부가 시정 25주년을 기념하여 표창한 표창자 명단에도 들어 있다. 여수군 주사 재직 때 황의연, 곽경환 등이 학교를 설립하자는 의견에 부속건물 및 370두락의 노인당 재산과 여수 지역에서 1,200원을 기부 받아 군수인 김종휴(金鍾烋)의 재가를 얻어 1909년에 사립 경명학교(鏡明學校)를 설립하였다. 또 1917년 여수간이수산학교 설립에도 물심양면으로 공헌하여 이 고장 신교육에 기여한 공적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중추원 부문에 모두 포함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7.18 내용추가 [활동사항] - 1896년 여수군 향시배행향유사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 1923년 3월에는 조선민립대학기성회 중앙부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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