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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3067
한자 孫祥基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연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신병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화가
출신지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연도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949년연표보기
몰년 1988년연표보기
대표경력 1983년 미술평론가 선정 문제작가 선정

[정의]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현대 화가.

[개설]

1949년 여수시 남면 안도리에서 출생하여 서초등학교, 제일중학교, 여수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때 홍대 주최 전국학생실기대회에서 수채화부문에 특선을 비롯하여 각종대회에서 이상을 하면서 미술재능을 인정받았다. 1973년에 원광대학교 사범대학미술교육과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1976년 제7회 구상전 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공모전에 입상하였으며, 1981년 첫 개인전을 동덕미술관에서 개최하였다. 1983년 미술평론가가 선정한 문제작가로 선정되면서 주목을 받게 된다. 1984년에 샘터화랑 초대전을 시작으로 각종 전시에 참여하게 되고 1987년 호암갤러리 초대개인전을 마지막으로 지병으로 39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대표작품으로 〈자라지 않은 나무〉, 〈공작도시〉 등이 있다.

여수가 낳은 천재화가, 국민화가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고 있는 그의 작품세계는 인간의 비정함, 소외되고 찢겨진 삶에 대한 조형화는 인간회복을 갈구하는 그의 피맺힌 절규이다.

민중의 현실과 심리를 잘 투영하면서 자기 삶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인간내면의 복합적 갈등과 심리적 묘사에 탁월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활동사항]

손상기의 그림에 대한 만남은 중·고등학교 재학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그의 『자라지 않는 나무』도 여수 제일중학교와 여수 상업고등학교 재학시절에 그가 만난 자신의 자화상이자 반려자였다. 그 나무에 등을 기대 스케치에 열중하곤 했는데, “동병상련”의 그의 상처난 영혼을 위로 받게 된다.

온갖 소외와 절망 속에서 그림은 그에게 빛이었고, 구원이었으며 상채기난 꿈을 실현시키려는 욕망이었으며, 상실에 대한 극기였다.

그후 원광대학교 미술과를 다니면서 자신의 세계 확립에 몰입한다.

가난한 환경과 무서울 정도의 집념은 대학생활 동안 그의 건강을 돌 볼 틈을 주지 않았다. 밤새운 작업에도 끼니를 거르는 것이 다반수였기에 한 때 폐결핵을 앓기도 했다. 그의 육체가 망가져가면 갈수록 그의 예술 정신, 예술을 향한 그의 의지와 촉각은 날이갈수록 첨예하게 번뜩였다.

대학시절 그는 숙명적 고독에다 정서적, 설화적인 작품들로 안으로 억제되고 감추어진 자아를 주로 표현했다. 원광대 졸업 후인 1973-1974년 그는 전라북도 미술전람회 입선을 시작으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낸다. 1975년에는 구상전 공모에서 동상, 은상, 입선 등을 한다.

1976년에는 전라북도 미술대전에서 특선, 구상공모로 은상, 한국 창작미술협회 공모전 입선등 굵직굵직한 결실을 얻어냈다.

1979년에야 서울 북아현동에 있는 골목을 몇 번 돌아 허름한 건물의 지하에 그는 화실을 내고 몇몇 학생을 지도하면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그 결과 1981년 동덕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가질 수 있었고, 중앙일보 주최 중앙미술 대상전에 입선하는 영광을 안았다.

1981년 이후 매년 개인전을 열었고 그가 요절할 동안 다섯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1983년에는 미술평론가들이 뽑은 “83년의 문제작가”로 선정되었으며, 고향 여수의 한길화랑에서 초대전을 가졌으며, 1984년에는 “83. 현대 문제 작가전”에 출품하였고, 조선화랑에서 열린 “작업실의 작가 16인전”에 초대 되었으며, 국립현대 미술관 개최 해방 40년 민족사전에 출품하는 등의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LA현대화랑 초대 구상전, 샘터화랑 초대 개인전을 통해 활발한 활동으로 한 화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굳혀간다. 그러던 1985년에 발병하여 폐혈성 심부전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고 결국 그가 예술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 한창 때인 1988년 폐울혈성 심주전증으로 39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저술 및 작품]

시들지 않은 꽃, 공작도시, 자라지 않은 나무, 영원한 퇴원 등 400여 점의 작품이 남아 있다. 손상기가 참여한 개인전과 단체전을 아래와 같다.

1983년 손상기전(동덕미술관), 1984년 문제작가전(서울미술관), 작업실의 작가 초대전(조선화랑), 한국미술협회전(국립현대미술관), 구상회원전에 참여하였다.

1985년 초대 개인전(샘터화랑), 개관기념 초대 개인전(평화랑), 민족미술협회 가입, 1986년 손상기 초대전(대구 이목화랑, 샘터화랑, 바탕골미술관, 평화랑), 정예작가 초대전(동덕미술관) 30대 기수전(록화랑) 미술세계기획 〈86형상흐름전〉, 그랑빨레 비평구상협회초대전(프랑스 파리), 주일 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7주년 기념 구상초대전(도쿄), 1987년 화랑미술제 초대개인전(호암갤러리)을 가졌다.

[상훈과 추모]

1975년 제6회 구상전 주최 공모전 〈그날에 나는〉 동상 수상, 1976년 제7회 구상전 주최 공모전 〈자라지 않은 나무〉 은상 수상, 1977년 전라남도 미술전람회 특선, 1981년 1회 개인전 개최(동덕미술관), 장애자 돕기 자선전(출판문화회관), 한국현대미술대상전 〈공작나들이〉 동상, 중앙일보 주최 중앙미술대전 〈공작도시〉도 입선하였다. 1982년 한국미술대전 〈공작도시-신음하는 도심〉으로 입선, 제11회 구상전 주최 공모전 특선하였다. 1983년 미술평론가 선정 문제작가로 선정되었다.

작고 후 유작전으로는 1989년 기념유작전(샘터화랑, 강남현대화랑), 『요절한 문제작가 그 천재성의 확인』 화집 발간, 1990년 〈예술혼을 사르다 간 사람들〉(이석우), 1998년 작고 10주기 기념전 및 화집 발간 『손상기의 글과 그림 - 자라지 않은 나무』, 2000년 여수 MBC 다큐 〈시대와 인물-화가 손상기〉 방영, 손상기 평전 발간 『39세까지 칠한 사랑과 절망의 빛깔』(박래부), 2001년 인물탐구 〈지금 그사람 이름은〉(장석주), SBS 주최 〈손상기 13주기 기념전- 요절한 작가 그 천재성의 확인〉(예술의 전당), 2004년 손상기 16주기 기념전 〈낙타 사막을 건너다, 불굴의 의지 찬란한 예술, 국민화가 손상기〉(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2008년 작고 16주기 기념전(국립현대미술관)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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