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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31033
한자 尹莊
이칭/별칭 윤재춘,윤재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공화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종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2년 6월 17일연표보기 - 윤장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88년 4월 6일연표보기 - 윤장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2년연표보기 - 윤장 대통령 표창 수여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윤장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여수군 - 전라남도 여수시 공화동지도보기
묘소 윤장 묘소 -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윤장(尹莊)은 1922년 6월 17일 전라남도 여수시 공화동에서 태어났다. 1936년 4월 광주학생운동을 거치며 민족의식이 팽배했던 광주서공립중학교[광주고등보통학교로 출발]에 입학하였다. 1941년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에 들어갔다. 그해 12월 귀국하고 유몽룡(劉夢龍)·강한수(姜漢秀) 등이 조직한 항일 비밀결사 무등회(無等會)에 가입하였다. 당시 무등회 회원들은 식민지 정책 반대, 일본어 사용 금지, 학병 지원제도 반대, 일본 상품 불매운동 등을 결의하고 고향 또는 직장 등에서 활동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전라남도 담양군의 무정국립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주만우(朱萬尤)가 현지에서 활동하다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면서 무등회 조직도 노출되었다.

1942년 1월 윤장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수개월간의 구속 끝에 12월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1943년 5월 광주서공립중학교에서 일본인 교사에게 아부하는 학생을 집단 구타하는 사건이 일어나 주동 학생이 구속되면서 전교생이 동맹휴학을 단행하였는데, 그 배후에 무등회가 관련되었다고 하여 7월 윤장 등 무등회 회원들은 다시 구류되었다. 윤장은 9개월간의 심한 고문을 받고 1944년 5월 구류 집행정지로 다시 석방되었다. 이 기간 동안 무등회 회원 네 명은 고문으로 옥사하였다. 출감 후 윤장은 요시찰인으로 광주대화숙(光州大和塾)에 수용되어 감시를 받다 8·15광복을 맞이하였다. 윤장은 1988년 4월 6일 사망하였다.

[묘소]

윤장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에 자리한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1묘역-44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윤장의 공훈을 기리어 1982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였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 국립대전현충원(http://dn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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