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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31323
한자 芳山新安朱先生玄錫遺墟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1길 48-2[여천동 580]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49년 7월연표보기 - 방산 신안 주선생 현석 유허비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99년 - 방산 신안 주선생 현석 유허비 전라남도 여수시 삼일동 화치마을에서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1길 48-2[여천동 580]로 이전
현 소재지 방산 신안 주선생 현석 유허비 -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1길 48-2[여천동 580]지도보기
원소재지 방산 신안 주선생 현석 유허비 - 전라남도 여수시 삼일동 화치리 화치마을
성격 유허비
관련 인물 주현석|오병환|양한탁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너비, 두께) 234㎝[총 높이]|149㎝[비석 높이]|54㎝[너비]|24㎝[두께]
소유자 신안주씨 여수종친회
관리자 신안주씨 여수종친회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동에 있는 유학자 주현석을 기리는 유허비.

[건립 경위]

1949년 7월 초순 방산(芳山) 주현석(朱玄錫)의 제자들이 주현석의 행적을 널리 알리고자 방산 신안 주선생 현석 유허비(芳山新安朱先生玄錫遺墟碑)를 건립하였다.

[위치]

방산 신안 주선생 현석 유허비는 전라남도 여수시 삼일동 화치마을에 세워졌으나 화치마을이 철거되어 주민들이 이주를 하게 되자 세명당 앞 정문인 여수시 여천1길 48-2[여천동 580]로 이전하였다.

[형태]

화강암으로 된 기단 위에 오석으로 비신을 만들고 비갓을 올렸다. 총 높이는 234㎝이고, 비석 높이는 149㎝, 너비는 54㎝이고, 두께는 24㎝이다.

[금석문]

비신 중앙에는 ‘방산 신안 주선생 현석 유허비(芳山新安朱先生玄錫遺墟碑)’라고 쓰여 있다.

후면에는 “선생(先生)님이신 신안주공(新安朱公)의 이름[諱]은 현석(玄錫)이요 호는 방산(芳山)이니 창주부(滄州夫)의 후예이시다. 세가는 여천시 화산 아래이며 여기에서 탄생하사 유년 시절부터 선각(先覺)하셔 가훈을 이어 받아 성장하여서는 학문이 깊게 되어 실천하심에 문장이 깊고 말씀이 든든하셔 날로 명예롭게 뛰어나니 그 재주를 쓰심에 기탄없이 구슬 같으나 학문이 멀리 떨어져 있어 벼슬에는 아깝게도 천거하지 못하니라. 가만히 있을 당시 집사자가 애석하게 여겨 공을 세상에 표출코자 하나 티끌에서 난 것이 백미(白眉)처럼 잘나서 모질게 오른 바람에 맑은 소리가 든든하다. 노년에 출입을 끊으나 날로 젊은이가 뒷문으로 이른 자 많아져 이곳에서 학문을 닦은 공이 사표가 되니라. 오호라 공은 세상을 떠난 지 몇십 성상이로다. 제자 서선집, 서한식이 유문(遺文)을 거두어 새기고자 세대(世代)를 따라 찾고자 했으나 모두 원본이 없으니 제자들은 살을 에이는 듯하구나. 구슬 같은 유문(遺文)을 한탄하나 어쩌리오. 마침내 개연히 분기하여 지역의 유생과 더불어 많은 사람이 건의하여 유허비를 세우노니 높은 뜻을 어찌 한탄하지 않으리오. 이로 인해 내가 불미하나 어찌 못한다고 사양할 수 있는가. 이에 외람하게도 시(詩)를 써서 새기노라.”라고 쓰여 있다.

좌측면에는 “저 절개 따라 화산에는 방산께서 내려오셨네 무지개구름 아름답게 모두 이산에 나타났네 찰랑거리는 물이요 팔·구척의 산이로다 비단 장막에 거문고 키고 길이길이 산에 있으니 남극성의 원기에는 화산의 방산이요 돌을 다듬어 비세 우노니 산과 흡사하구나[節彼華山 降此芳山 雲霓美梓 竝出于山 盈科之水 九仞之山 繡帳結誦 長在于山 斗南元氣 華山芳山 新石不泐 可以齊山]”라고 쓰여 있다.

우측면에는 ‘단기4282년 기축 칠월 상완 해주오병환 짓고 남원양한탁 해석하였으며 집안 사람들로 유사를 세운바 당질 재춘과 종손 금식이다(檀紀四二八二年 己丑 七月 上完 海州吳炳煥謹撰 南原梁漢鐸謹譯幷書 門人所立 有司 堂侄在春 從孫今植)’이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2021년 6월 현재 방산 신안 주선생 현석 유허비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방산 신안 주선생 현석 유허비는 여수 지역 유학의 흐름을 보여 주는 지표로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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