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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의 역사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A010101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호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안도(雁島)는 여수시에서 남쪽으로 34㎞ 떨어진 곳에 있는 섬으로 북쪽에 금오도가 있고 남쪽에 연도가 있다. 면적은 3.96㎢, 해안선 길이는 29㎞이며, 섬 중앙에 솟은 상산(上山)[207m)]이 가장 높다. 상산 정상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있는데, 왜구의 침략과 상황을 알리던 요망소로 추정되며 금오도의 심포마을 요망소와 서로 연락을 취했을 것으로 보인다. 돌로 둥그렇게 쌓은 아랫부분은 약 6m, 높이는 1.5~2m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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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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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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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망대

동도서도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두 섬 사이에는 200m 정도의 수로(水路)가 뻗어 있어 천혜의 항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수로 남쪽 끝에 발달한 사주에 의하여 두 섬이 연결되었다. 백금만(白金灣)을 비롯해 동고지와 서고지 등 여러 만과 곶이 있어서 섬 모양이 마치 기러기와 같다 하여 안도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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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섬을 연결하는 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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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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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포

근해에서는 멸치·갈치·방어·도미 등이 많이 잡히며, 김과 미역 등 해조류도 풍부하다. 북동쪽에 있는 백금만의 백사장은 해수욕장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이야포마을 바닷가는 원마도가 높은 자갈 해안으로 되어 있다. 북쪽 이야포만의 부두는 일본인들이 어항을 건설하면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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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해안

안도금오도연도에 이어 남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섬 안에 안도마을과 서고지마을이 있다. 안도리 1314번지 일대와 790-2번지 일대에 신석기시대 조개더미 유적이 있다. 금오도 연도교 공사 현장을 발굴할 때 유구·융기대문토기·선문토기·두립문토기·석기류·골각기류·흑요석·돌톱·유골 등 다수의 유물 출토되어 안도에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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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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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조개더미

삼국시대인 538년(백제 성왕 16)에 돌산현 관할이 되었고, 남북국시대에는 여산현 관할이었다. 847년(문성왕 9) 일본인 승려 엔닌[圓仁]『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 내용 중에 엔닌장보고 휘하에 있던 김진의 배를 타고 중국 적산포를 떠나 하루 낮 하루 밤에 한반도 서안의 고이도에 도착하였으며, 다음날 구초도와 안도 기착 후 일본으로 간 기록이 나타나 있다. 안도는 신라 왕실의 방마산(放馬山)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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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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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구법순례행기

고려시대인 940년(태조 23)에 승평군 돌산현 관할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공도 정책으로 사람이 살지 못했고 순천부전라좌수영의 관할로 규찰을 받았다. 1860년의 경신대화재로 300여 호 중 안도리 898번지 1채만 남고 전소되어 주민들이 금오도·연도 등지로 이주한 적이 있으며, 1893년 이주회(李周會)[1843~1895]가 전라도 앞바다에 처음으로 일본 어선을 끌어들여 싹쓸이하는 바람에 부근 어장이 황폐해졌다.

안도는 1896년 돌산군 금오면에 속했다가 1917년에 금오면이 현재의 명칭인 남면으로 개칭되었다. 해방 후 나라가 세워진 직후인 1948년 여순사건으로 안도에서 무고한 민간인 11명이 희생되었다. 1959년에는 사라호 태풍으로 이야포 등천에 형성되었던 마을이 유실되고 본동 가옥이 침수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으나 주민들이 단결하여 굳은 의지로 극복하였다.

현재 안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조상[入島祖]은 임진왜란 이후에 섬에 들어 온 것으로 보이는데, 경주정씨가 가장 먼저 정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씨는 경상남도 남해도에 살면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풍랑을 만나 안도에 표류하게 되었다고 한다. 섬의 지형이 사람들이 살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가족과 함께 정착하게 되었으며, 그 후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들어와 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안도의 제당에는 정씨 내외의 위패를 모시고 있어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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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당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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