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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어장과 일본식 뱃노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A020101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호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안도에는 어로 방법과 뱃노래에 일본식 방법과 일본식 소리가 혼재해 있어 안도 문화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이사연[70세, 2008년] 할아버지는 들망의 기억을 재구성해냈다. 들망이란 고정 닻을 놓고 덕배를 기준으로 양쪽 배(마미, 사가미)에서 그물을 쳐 놓고 불배가 멸치를 유인하여 그물 안으로 모으면 양쪽 배에서 그물을 들어 올려 잡는 고기잡이 방법이다. 어장이 호황을 이룰 때는 이야포만에 9개의 선단이 조업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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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포

한 개의 선단은 5척으로 덕배를 기준으로 양쪽에 사가미 4명, 마미 4명, 종선 1명, 불배 1명으로 구성되었다. 멸치를 유인하는 불배의 불은 카바이트 가스 불을 켰으나 70년대에 들어와서는 발전기를 돌려 전등을 켰다. 멸치 어군을 불로 유인하여 덕배에 이르면 양쪽 마미와 사가미에서 그물을 당기면서 ‘어~스야 어~스야’를 선창하면 뒷소리로 ‘어~스야 어~스야’를 외치며 걸죽한 육담과 웃음소리로 고달픔을 잊었다고 한다.

또한 멸치가 모이는 그물인 분장을 올릴 때는 ‘오스메야~ 오스메야’를 3~4회 외치며, 멸치를 종선에 담아 올릴 때에는 ‘어~ 여류 강해야~ 어~ 여류 강해야~’를 외친다. 이때 종선에서는 뭍에 신호를 보내 물을 끓이게 하여 멸치를 삶아 건조하는데 멸치를 많이 잡을 때면 팥죽을 끓여 선원들의 노고를 달래 주었다.

멸치 어군이 형성될 때는 이야포만이 불야성을 이루었으며 안도의 경제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러나 멸치를 잡고 삶고 그물을 펴서 건조할 때 많은 인력이 드는 데다 1958년 미증유의 태풍 사라호로 인해 이야포 등천에 형성되어 있던 들망 어민들의 집들과 어선들이 파손되어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이러한 멸치잡이는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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