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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님 할머니의 서도리 자생 해녀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B020201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길

김팽님[1929년생] 할머니는 서도리마을에 사는 해녀이다. 올해 나이 80세로 서도리의 건너편인 동도에서 태어나 인물 좋고 힘 좋은 남편을 만나 서도리에서 살아왔다. 아들 딸 7남매를 둔 김 할머니가 39세 때 남편은 복어를 잘못 먹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모두가 그만그만하던 7남매를 키우는 일은 할머니의 몫으로 남아, 해녀 일을 통해서 홀로 가르치고 키워서 결혼시키고 나니 벌써 이만큼 늙어 버렸다고 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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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김평님 할머니

서도리에는 모두 7명의 해녀가 있다. 마을 어촌계에서 공동 작업이 가능한 지역을 년 200여만 원에 임대를 하여 함께 조업을 하는데 배를 이용하여 깊은 지역에서의 작업은 5명이 하고 남은 두 명은 나이가 많아서 섬 해변에서만 작업을 한다.

거문도에서는 해녀의 물질을 ‘무레질’이라 하는데 이 무레질을 열여섯쯤 시작을 했다. 당시에는 주로 백도까지 배를 타고 이동하여 작업을 했는데 전복, 꾸죽, 소라와 같은 어패류는 너무도 많았으나 돈이 되질 않아서 많이 잡지를 않았고, 미역이나 다시마, 가사리 같은 해조류를 더 많이 잡았다고 한다. 교통이 불편하던 당시에는 저장성이 좋지 않은 어패류보다 말린 후에 팔 수 있었던 해조류가 더 돈이 되었기 때문이다.

김팽님 할머니는 작년 가을 새 잠수복을 또 한 번 맞추었다. 일 년이면 한 벌씩 헤어져 새로 맞추어야 하는 잠수복을 이젠 그만둘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 장가를 못 보낸 마흔 살 막내 생각과 아직은 남아 있는 힘이 아까워서 22만원이나 하는 잠수복을 여수까지 나가서 새로 맞추게 되었다. 옛날에는 일을 잘해서 2등가라면 서럽고 일등만 했다는 할머니의 무레질 솜씨 이야기는 힘이 떨어지고 무릎이 아파서 힘이 너무 든다면서도 건강한 웃음을 잃지 않는다.

여수 지역에서는 조선시대 횡간도에 잠수군을 두어 전복을 잡아서 바쳤다는 기록이 『호좌수영지』에 전해지는데 잠수군은 오늘날의 해녀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해녀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많을 때는 전국적으로 1만여 명이 있었으며, 그 대부분은 제주도 해녀들이 다른 지방으로 일터를 옮겨 정착하면서 확산된 경우이다. 1930년대의 제주도의 출가해녀는 멀리 연해주로부터 산둥 반도까지 진출하여 일을 하였으며, 어패류나 해조류를 먹는 식습관 때문에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해녀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거문도는 이 섬 출신의 자생 해녀가 물질을 배워서 해녀가 된 경우로 예로부터 이런 전통이 이어져 오지만 지금은 해녀의 물질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 제주도가 고향인 대부분의 해녀는 옛날부터 동서남해안 육지의 연안으로 물질하러 갔다가 그 지역에서 남자를 만나 정착하면서 전국의 연안과 섬을 차지했었는데, 흑산도와 거문도, 거제도 등 규모가 큰 섬에서는 섬 자체적으로 물질이 이어져 온 자생 해녀들이 그 명맥을 유지해 왔다.

김팽님 할머니가 물질하는 서도리의 해녀들도 모두가 거문도에서 자란 자생 해녀이다. 대부분이 십대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데 가장 젊은 사람이 50대로 젊은 사람들에게 그 맥이 이어지지 못하는 해녀 일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앞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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