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울릉도를 개척한 서도 사람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B030201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호

거문도 주민들은 항상 왜구들의 노략질로 인하여 불안에 떨면서 살고 있었다. 그때 육지로부터 오척 단구의 키가 작은 한 청년이 마을 앞 해안에 표류하여 왔다. 동네 사람들은 이 청년을 극진히 간호하여 살려 주었는데 이름이 ‘오돌이’라고 했다.

오돌이 총각은 힘이 대단히 세어 지금의 죽촌 소하천 돌다리도 그때 오돌이 총각이 혼자서 만들어 놓았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왜구들이 쳐들어오자 맨손으로 싸워 무릎을 꿇게 하였으며, 그들이 빼앗아 간 금품을 다시 빼앗아 동네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 총각이 나이가 들자 사람들은 ‘오돌이 영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전설은 울릉도 초대 도감을 지낸 오상일에 대한 전설로 오돌이는 오도감이 와전되어 붙여진 것 같다. 오상일의 호적에 따르면 1854년 6월 8일 삼산면 서도리 675번지에서 태어났다. 그의 후손이 간직한 울릉도 도감 사령장인 교지(敎旨)를 보면 광서 6년 9월로 되었으니 1890년(고종 29)이며 그의 나이 36세 때이다. 그가 울릉도감을 그만둔 것은 1896년 초이었을 것 같다. 왜냐하면 후에 도감 배계주가 1896년 5월에 부임했기 때문에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오상일이 울릉도 도감을 했다는 근거는 교지 이외에 1896년 내무부 시찰관(視察官)이며 울릉도 시찰위원이었던 우용정(禹用鼎)의 울릉도 시찰보고서에서 한일 조사위원이 울릉도에 체류하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도벌과 각종 범죄를 심문하였는데 전 도감 오상일(吳相鎰)이 여러 차례 거명되었으며, 일본 영사가 ‘오 도감(吳島監)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전라도에 살고 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서도리는 울릉도와 관계되는 문헌과 이야기, 그리고 노랫말이 전해 오고 있다. 또 울릉도에서 가져온 목재로 건축한 가옥이 현존하고 있으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울릉도 목재로 만든 절구통, 다듬이, 홍두깨 등이 많이 있었다.

옛날에는 울릉도 목재로 집을 여러 채 건축하였으나 유일하게 서도리 669번지 김광호 소유 목조 슬레이트 20평이 남아 있었는데 2005년에 헐리고 말았다.

거문도의 뱃노래인 「술비야(술비소리)」의 노랫말 또한 울릉도 개척의 애환을 노래하고 있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울릉도로 나는 간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오도록만 기다리소/ 돛을 달고 노 저으며/ 울릉도로 향해 보면/ 고향 생각 간절하네/ 울릉도를 가서 보면/ 좋은 나무 탐든 미역/ 구석구석에 가득 찼네/ 고향산천 돌아오면/ 부모 처자식 반가와라/ 동네사람 반가워라/ 어기영차 배질이야/ 울고 간다 울릉도야/ …(하략)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술비소리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