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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 삶의 모습, 송도의 패총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C010201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박종길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824번지에 패총(貝塚)이 있다. 송도의 북쪽인 군내리송도를 이어주는 송도 쪽 나루터 부근이다. 1979년 조현종 현 국립광주박물관장이 돌산읍 임포리에서 군 복무중 발견하여 보고하고 1986년 돌산도에 대한 지표 조사가 학계에 보고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1989년 국립광주박물관은 송도 패총 유적 발굴 조사를 추진하여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조사를 실시하였다.

신석기시대에는 농경이 시작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정착 생활로 변화되었다. 특히 조개더미 유적은 이러한 정착 생활의 증거라 할 수 있다. 송도 유적의 집자리는 조개껍질층[貝殼層] 위에 진흙을 다져 만든 것으로 2기가 겹쳐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이 유구(遺構)가 조개더미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에 바닥과 연결되는 움벽을 찾을 수 없었고, 따라서 구조 문제는 명확하지 않지만 발견된 2기의 집자리는 둥근 화덕을 갖춘 원형 또는 타원형 집자리로 추정된다. 파괴되지 않은 일부분이 서쪽 언덕으로 이어져 다져진 바닥에서 둥근 바닥의 가장자리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또 암사동 등 유적지에서 보이는 집자리 및 화덕의 형태와 비교할 때도 그렇게 추론할 수 있다.

송도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토기의 바탕흙[胎土]은 욕지도 조개더미처럼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여지는 모래가 섞인 것도 있으나 대부분 진흙이 사용되었다. 손으로 빚은 작은 그릇들은 흙반죽을 엿가락처럼 길게 늘여서 코일 모양으로 감아 올려 제작하는 서리기[捲上法]와 제작 요령이 같으나 도넛 모양의 흙테를 여러 개 쌓아 올리고 테와 테 사이를 눌러 메워 가면서 형태를 잡아가는 테쌓기[積輪法]에 의해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송도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 가운데 형태를 완전히 알 수 있는 것은 석 점이었으며, 나머지 토기는 조각만 있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납작바닥 또는 둥근바닥(뾰족바닥 포함)에 바로 선 아가리가 달린 바리[鉢]나 깊은 바리[深鉢]가 대부분인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유물 가운데 바닥 조각은 84점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둥근 바닥류가 69점으로 납작바닥 조각 15점보다 훨씬 많다. 토기의 크기를 반영하는 속성의 하나로 볼 수 있는 입지름은 최대 49.4㎝에서 최소 9.2㎝로 나타나고 있으나 복원 가능한 40점 가운데 20.2~30.0㎝ 정도의 크기가 전체의 52.5%를 차지해 이 크기가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릇의 높이는 16.1~33.4㎝ 정도이다. 또한 몸통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66점으로, 그 크기는 0.5~1.8㎝이며, 속구멍은 0.3~0.8㎝로 밖에서 뚫기 시작하여 나중에 안쪽에서 맞뚫었음을 알 수 있다.

구멍은 무늬 없는 토기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데, 덧무늬토기와 점줄무늬나 짧은빗금무늬토기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 구멍은 그릇을 수리할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양쪽에 대칭으로 뚫린 구멍의 경우는 실이나 끈을 꿰어 그릇을 걸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송도 조개더미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의 무늬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그 구성이나 베푸는 방법도 다양하다. 무늬는 대부분 아가리에서 시작하여 몸통의 2/3 부분까지 면적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이며 바닥까지 베풀어진 토기는 없었다. 덧무늬토기는 유적 모든 층위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진흙 덧띠는 따로 만들어 붙인 것과 그릇 표면에서 돋게 한 방법이 있다. 후자는 방법이 거칠어 새기개 등으로 긁거나 손으로 덧문질러 진흙이 덕지덕지 밀려서 무늬가 된 것도 있다.

무늬는 평행 덧띠와 경사진 덧띠가 결합하여 구획을 채우는 방법이 대부분이나, 아가리 가까이에 삼각형이나 둥근 모양으로 덧띠를 붙이는 경우가 발견되었으며, 드물게 덧띠를 위아래로 듬성듬성 붙여 무늬를 구성한 것도 있다. 한편 띠 위에 촘촘히 자른 작은 덧띠를 기하학적으로 배치하거나, 다양한 가는금무늬와 결합하고 있는 독특한 형태도 나타난다.

굵은금무늬토기는 비교적 굵은 새기개를 사용하여 눌러 그은 것으로 서해안의 빗살무늬 전통과는 구별되는 남해안 지방의 특징적인 무늬 구성 방법이다. 토기의 겉면에 한 줄씩 규칙적으로 눌러 그어 시작하는 곳과 무늬가 끝나는 곳의 한쪽 또는 양쪽 끝에 둥근 흠이 나 있는 것도 있다.

주로 삼각형 또는 사다리꼴 등의 무늬 구성을 보이는데, 베풀어진 무늬의 종류는 이음×표무늬에 평행줄무늬, 빗살무늬, 평행줄무늬, 평행과 빗금이 결합된 무늬[集線紋], 지그재그와 같은 이음∑무늬 외에도 풀대자국이 남은 삼각형무늬, 물결모양무늬 등 다양한 무늬가 출토되었고, 골아가리와 결합한 예도 있다. 이와 비슷한 무늬 수법을 보이는 유물은 동삼동·다대포·수가리·욕지도·임불리·강누리 등 남해안 여러 유적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는금무늬토기는 비교적 끝이 날카로운 새기개를 사용하여 무늬를 새긴 것으로 아가리 아래에서부터 무늬가 베풀어진 것이 많다. 무늬는 엇빗금에 의한 빗살무늬가 새겨진 것이 가장 많으며, 좌우로 긴 마름모꼴을 만들고 그 여백에 붉은 덧칠을 하여 무늬를 구성하고 있는 것, 꽃잎을 만든 것, 생선뼈무늬를 새긴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전형적인 서해안 지역의 빗살무늬토기 형태를 띤 것은 1점에 불과하여 당시 이 지역 문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덧무늬토기와 결합하여 복합 빗살무늬를 나타낸 유물이 있는데, 덧띠와 빗금이 결합하는 무늬 구성이 특징적이다.

손톱무늬토기는 붓뚜껑이나 손톱과 같은 형태의 새기개로 눌러 찍어 만든 것으로 다섯 점이 출토되었는데, 대체로 연속적으로 무늬를 베풀어 이음무늬 모습을 띤다. 아가리 가까이에서부터 무늬가 베풀어지며, 그 가운데는 가는빗금과 결합된 것도 있다.

점줄무늬토기는 삼각형 또는 원형의 점이나 짧은 빗금을 1~3줄부터 여러 줄을 연속적으로 찍거나 그어 무늬를 구성한 것으로 아가리 가까이에서 베풀어진다. 삼각형을 옆으로 눌러 찍어 거의 전면을 꾸민 것과 끝이 둥근 무늬 새기개로 규칙적으로 찍은 것, 가는 점을 옆으로 이어 찍어 내린 것과 짧은빗금무늬에 의한 것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동삼동·북정동·암남동·김해 죽곡·거제 산달도 조개더미 등에서 발견된 적이 있으며, 신석기시대 늦은 시기의 유물로 알려지고 있다.

토기의 겉면과 안쪽면 일부에 붉은 덧칠을 한 붉은칠토기의 수량은 많지 않은데, 칠을 하는 순서에 따라 굽기 전에 칠한 앞칠과 뒤에 칠한 뒷칠이 있다. 뒷칠이 일반적이며, 잘 칠한 것도 있지만 떨어져 벗겨진 것도 나타나난다. 붉은칠토기의 바탕흙은 다른 토기와 같이 모래가 섞인 진흙이 대부분이며 특별히 고운 흙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체로 무늬없는토기와 긁거나 가는금무늬와 결합되는 경우가 많으며, 덧무늬토기에도 나타나고 있다.

무늬없는토기는 송도 유적에서 가장 많이 출토된 것인데, 무늬가 있던 토기의 무늬 없는 부분이거나 원래부터 무늬 없는 토기로 청동기 시대의 민무늬토기[無文土器]와는 구별된다. 바닥은 납작바닥과 둥근바닥으로 몸통에 이어지며 바로 선 아가리가 달린 바리가 일반적인 형태이다. 무늬없는토기를 대표하는 것으로 골아가리를 들 수 있는데, 대체로 끝이 둥글거나 뾰족한 새기개로 찍어 골을 만들었다.

송도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류는 만든 방법에 따라 뗀석기와 간석기로 구분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형태나 석질(石質)은 매우 다양하다. 각 층위에서 출토된 석기의 총 수량은 87점이나, 용도나 명칭이 뚜렷하지 않은 10점이 포함되어 있다. 숫돌이나 갈돌·갈판을 제외한 연모류는 주로 뗀석기가 쓰이고 있으며, 작은 손도끼류는 뗀석기의 일부만 갈아 날을 만들고 있다.

석질은 사암·안산암·응회암·이암·조면암·혈암·화강암 등 유적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점판암이나 흑요석처럼 이 지역에서 구하기 어려운 다른 지역 암석도 발견되고 있다. 밀개나 격지·돌날 등 뗀석기에는 주로 이암·안산암·응회암 등 입자가 비교적 치밀한 종류를 썼으며, 숫돌과 갈돌 등 가는 용도에는 주로 사암이 활용되었으나 조면암과 화강암도 나타난다.

석기의 쓰임새로 볼 때 사냥이나 고기잡이를 위한 돌화살촉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사냥돌로 생각되는 공 모양의 돌이 여러 점 발견되고 있어 사냥이 보조적인 생활 수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기는 밀개·격지·돌날 등 채집과 조리를 위한 연모, 도끼류·숫돌·갈판 등 실생활에 쓰이는 연모가 대부분인데, 이것은 유적의 주된 식량 공급원으로 추정되는 조개더미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나타내고 있다. 부리 모양 석기나 버선 모양 연모는 굴을 깔 때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와 함께 곰배괭이·돌삽 등 농기구로 보이는 연모의 출현은 사냥이나 고기잡이와 함께 정착 농경 생활이 이루어진 것을 반영하는 자료로 보인다.

한편 당시 고기잡이 방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인 이음돌낚시가 출토되어 신석기시대 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이음돌낚시는 오산리·신암리·동삼동·연대도·욕지도 등에서 출토된 예가 있는데, 낚시를 돌로 만든 것은 우리나라 동해안과 남해안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만 출토되는 독특한 문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죠몬시대[繩文時代] 여러 유적에서 이음돌낚시와 같은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뼈이음낚시가 발견됨으로써 한반도와의 문화 교류 및 전파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 문제는 송도안도 ‘가’ 유적에서 발견된 흑요석과도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송도 유적에서 출토된 뼈 연모나 꾸미개는 다른 유물에 비해 단순한 편이다. 뼈 연모는 당시 사람들의 주된 사냥감으로 추정되는 사슴이나 멧돼지·조랑말 등의 뼈나 뿔로 만든 것이며, 예새 등 무늬를 새길 때 사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꾸미개는 조개껍질을 갈아 만든 것인데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진 것도 있어 출토된 다양한 크기의 숫돌이 이러한 꾸미개 제작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그물 손질에 쓰이는 뼈바늘로 보이는 유물이 1점 있는데, 사슴뿔을 납작하게 갈아 만든 것이며 밑 부분은 파손되어 알 수 없다. 서포항·동삼동·상노대도 등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일반적으로 출토되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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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패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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