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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우물과 네 다리, 삼정사교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C020202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박종길

방답진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삼정사교(三井四橋)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마을에 있었던 세 곳의 우물과 네 곳의 다리를 말하는데, 마을의 풍수지리로부터 시작하여 우물과 다리에 얽힌 많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삼정사교의 이야기를 전해 주는 유적으로 본래는 군내리 남문 안에 있었다는 삼정사교중창비(三井四橋重創碑)를 들 수 있다. 『여산지(廬山志)』가 만들어진 1899년에 “지금은 이미 비면이 깎여서 알아볼 만한 글자가 거의 없다.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각문의 머리에 있는 숭정기원임술추(崇禎紀元壬戌秋) 일곱 자뿐이다.”고 기록하여 비석이 만들어진 날짜를 알려주고 있다. 숭정기원임술년은 1628년에 명나라에서 숭정 연호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로부터 첫 번째 임술년은 1682년(숙종 8)이다.

삼정사교중창비는 비명에 중창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점으로 보아서 이들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비가 훼손되어, 김세광·김세웅·황성오·노성국·윤치인·김득연·정효관·김광신·윤흥신·김택승·강이도 만이 『여산지』 집필 당시에 비에서 확인된 이름이며 나머지는 확인이 어렵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모든 글자가 읽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세 우물 중에 현재까지 남아 사용하고 있는 것은 하나는 현재 읍사무소 앞에 있으며 다른 하나는 동내리에 있다. 나머지 하나는 서외리에 있는데 현재 사용치 않고 흔적만 남아 있다. 삼정의 내부를 살펴보면 민가에서 축조했던 우물과는 달리 대형 바윗돌을 다듬어서 작은 돌을 쌓아 올렸다. 이곳 샘물은 수돗물이 공급되기 전인 1980년대까지도 식수로 사용하였다.

천황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계곡을 만들어 마을을 지나고 있어서 건너다닐 다리가 필요하여 네 개의 다리가 건설되었다. 지금은 골목과 작은 하천 모두를 복개하였기 때문에 다리 형태를 짐작하기 힘들지만, 위치에 대해서는 『여산지』에 관아의 앞쪽, 남문 안, 홍문가 서쪽, 홍문가 남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정사교를 중창한 방답진 시절의 조상들은 후손들에게도 자신들의 치적을 전해주어 마을에 좋은 본보기로 삼았다. 이후에도 삼정사교에서 이어 죽포의 마주교나 김우섭의 시혜비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개인이나 주민이 출연하여 다리와 건물을 짓게 하는 선행은 그 명맥이 이어져 오랫동안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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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정사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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