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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의 원자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D020103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무성

손양원 목사는 1948년 10월 25일, 여순 사건으로 두 아들이 잃게 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여순 사건은 빨리 진압되어 바로 정세가 바뀌어서, 손동인·손동신 형제를 죽인 자들 중의 하나인 안재선이라는 학생도 체포되어 총살당할 처지에 놓였다. 그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는 계엄사령관에게 찾아가서 석방을 간청하였다.

“내 죽은 아들들은 결코 자기들 때문에 친구가 죽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 애들은 친구의 죄 때문에 이미 죽었습니다. 만일 이 학생을 죽인다면 그것은 손동인·손동신 형제의 죽음을 값없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간청은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손양원 목사는 그 학생을 이름을 손재선이라 하여 자신의 아들로 삼았다. 죽임을 당한 아들들에 대한 회한은 땅에 묻어 두고 예수가 근본적으로 설파한 원수를 사랑하라는 쉽지 않을 계명을 실천으로 옮겼다. 자식을 둔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자식을 그것도 둘이나 잃어야 하는 분노의 감정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있음직함에도 이를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손양원 목사는 예수의 계명을 말씀 그대로 순종하고 복종하여 실천한 20세기 사랑의 사도이며 성자이다. 이를 소재로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영화가 제작되어 널리 보급되기도 하였다.

영화 「사랑의 원자탄」을 단순히 특정 종교 전도를 위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영화 개봉 이후 안재선을 구한 것은 사랑의 실천이 아닌 전도 수단이었다는 혹평까지도 등장하였다. 이에 대한 정확성 여부는 전혀 검증할 수가 없어 순전히 관람자들의 몫으로 남겨 놓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것처럼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의 죽음을 안재선의 단독 책임으로 돌리기는 너무 많은 짐들을 안재선에게 떠넘겼다는 사실이다. 안재선도 분명 이데올로기의 철저한 희생양이다. 좌익 사상에 대한 두 아들의 지나친 적개심이 좌익 활동가들의 표적이 되어 죽임당하는 직접적인 요인이었다는 진단이 객관적인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 어디에도 민족 분단의 아픔들이 존재하는 데, 애양원을 중심으로 한 공간에서도 똑같은 희생자들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희생자 가족인 손양원 목사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직접적인 응보 방식이 아닌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미는 방식의 비폭력 무저항의 형식을 취하였다. 동시에 내용 면에서는 ‘사랑’이라는 무조건적인 자애심을 표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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