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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선교사들의 생활(우월순 사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D020205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무성

윌슨(Robert M. Wilson) 의사의 한국 이름은 우월순이다. 우월순은 1907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본부로부터 한국 선교사로 인준받았다. 1908년부터 2년간 1,500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하였다. 우월순은 1909년 포사이트(Wiley H. Forsythe)가 데리고 온 여성 한센병 환자 치료를 계기로 애양원을 탄생시켰다. 1910년 한 해에 20,000 명이 넘는 사람들을 진단하고 봉사하였다. 그의 자서전적인 기록에 이를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오늘 30명을 치료하였는데 개복 수술, 탈장, 복막염 등이다. 어찌할 수 없어 이 환자들을 그냥 땅바닥에 뉘여 놓았다. 어제는 수술이 두 건이었으며 내일은 아주 중요한 수술이 있다. 총을 맞고 허벅지 수술을 받은 사람이 침대도 자리도 없기 때문에 6주간이나 딱딱한 책상 위에 있었다. 다리 고정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우리 진료소는 현재 대기실이 두 개이고 약국과 붕대실이 있다. 입원실이 없지만 4명은 받아들일 수 있다. 침으로 여자 소녀의 썩은 다리를 절단해 주었으며 그 애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아침 40명이 진료소를 방문하였다.

거기에는 다리를 저는 자, 절뚝거리는 자, 눈먼 자, 그리고 18개월 된 사람으로부터 70세 된 사람까지 다 있었다. 잿물 중독이 2건, 자살 시도 1건, 한센병 2명, 암 1건, 싸워서 다리 한쪽이 심하게 다친 사람, 화상을 크게 입은 사람, 피부이식이 필요한 사람, 침으로 인하여 종양이 생긴 경우 등은 의사의 전문 치료를 필요로 하였다.

선교부 부인들이 말하는데, 한 어머니는 15세 아이를 업고 80㎞를 걸어왔으며, 어떤 이는 440㎞를 손과 무릎으로 기어서 왔으며, 생후 20일 된 아이는 침 자국이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 없었다. 아이는 그날 저녁에 죽었다.

가장 관심 있는 사례는 40세쯤의 한센병 환자로서 기뻐 춤추며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하였다. 허리까지 벗은 상태이었으나 나에게 재잘거리지 않고는 베길 수 없어했다. 그는 자신의 한센병 자국이 얼마나 낫고 치료되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어 했다. 이토록 환자 표정이 밝은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지난 해 20,000명을 진료하였다.”(R.M. Wilson, The Missionary, 2(1911), 76-77쪽)

그 후 우월순은 1925년에서 1927년까지 광주의 한센병 환자들을 애양원으로 집단 이주시켜 치료하다가 1938년 일제의 외국인 철수 계획에 따라 1941년에 귀국하였다. 1946년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서 전국에 흩어져 있는 한센병 환자들의 안식처를 마련해 주었다. 1948년 미국으로 귀국하여 15년 후인 1963년에 영면하였다.

우월순은 환자 치료에서 영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리하여 영적인 면에서는 교회 생활을 통하여 구원의 확신에 이르게 하였고, 정신적인 면에서는 일상적인 생활인으로서 스스로를 자각하는 것과 활동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활동이 가능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각종 생활 교육을 실시하여 스스로 자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자활 대책으로 목공·미장공·제화공·대장공·벽돌 제조공·의료 기술자가 되기를 적극 권유하였으며 자급자족을 위하여 모두 다 농사일에 참여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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