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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개통과 덕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E010102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정현

일본은 조선을 강제로 점령하고 나서 한반도 통치와 대륙 진출을 위하여 남해안 주요 항구로부터 북으로 연결되는 철도를 부설하게 된다. 1905년 개통된 부산-서울 구간인 경부선을 비롯하여 1914년 개통된 목포-서울 구간인 호남선, 1930년 개통된 여수-광주 구간인 경전서부선 그리고 1936년 순천-이리 구간인 전라선 등이 개설되었다.

덕양 에 기차역이 들어서게 된 것은 1930년 개통된 경전서부선이 덕양에 부설되면서부터이다. 여수-순천-광주를 잇는 160㎞의 경전서부선은 남조선철도(주)에 의하여 부설되었고 이어서 전라선이 개통되자 덕양의 생활 교류권이 하루아침에 소라면·화양면·율촌면에서 벗어나 전라선을 따라 순천-구례-남원-전주-서울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경전서부선을 따라 순천-벌교-보성-화순-광주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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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양역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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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양역 플랫폼

철도가 개통됨으로서 덕양은 남쪽으로 여수반도 남단으로 연결되어 남해안의 해양 문화와 교류가 가능하게 되었고, 북쪽으로부터는 서울·광주·전주·부산 등 도시와 교류가 가능하게 되었다. 덕양역을 통해 공산품과 농기구 등이 들어올 수 있게 되었으며, 화양면·소라면·화정면 일대의 농산물과 수산물이 이곳을 통하여 보성이나 광주뿐만 아니라 곡성·구례 지역에까지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여수-광주간 경전서부선 철도 개통으로 말미암아 내륙 지역과의 교류뿐만이 아니라 일본 시모노세키 연락선과도 연결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덕양은 서울과 여수를 거쳐 일본에까지 닿을 수 있게 되었다. 한때는 변방에 속했던 여수 지방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개화 문물과 신교육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철도는 덕양을 성장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도로가 개설되어 있었지만 비포장인데다 비탈이 많아서 육로 왕래가 쉽지 않았다. 육상 대중교통 수단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하였던 시기였기 때문에 덕양역은 다른 지역과 교류하는데 중요한 창구 역할을 하였다. 학생들은 열차를 타고 순천까지 통학하기도 하고 열차를 따라 대도시로 유학가기도 하였다.

외지의 행상들이 덕양역을 통하여 물건을 팔러 들어오기도 하고 반대로 기차를 이용하여 먼 곳까지 물건을 팔러 나가기도 하였다. 덕양은 철로로 연결된 지역과 많은 교류가 이루어졌는데 이들 지역과 왕래가 많다 보니 덕양에는 외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다. 1980년대 초까지 만해도 덕양역은 짐을 멘 행상과 순천이나 여수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이용하던 시골역이었다. 기차만 타면 버스가 갈 수 없는 서울·대전·전주 그리고 부산까지 갈 수 있었던 곳이 바로 덕양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역의 기능이 약해지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후반은 전국적으로 도로망이 확충되기 시작한 때였다. 여수에도 여수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된 이래 진입 도로망이 구축되었다. 이 무렵이 되면 육상 교통수단이 발달하게 되는데, 시외버스 운행이 많아지고 승용차와 화물차 운행이 많아지면서부터 철도가 여객과 화물 수송 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감소하게 되었고 여객들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1970년대부터 운행되었던 보통열차인 비둘기호는 운임이 싼 데다 많은 농산물 휴대가 가능하여 농촌이나 행상들로부터 사랑을 받기도 하였다. 특히 여수-광주-목포간 운행되었던 비둘기호는 주말에 고향 가는 학생들로 만원이었다. 비둘기호는 여객 감소에 따른 경영 적자라는 이유로 지금은 사라져 버려 보따리를 멘 행상이나 가방을 든 학생들이 덕양역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덕양역은 가장 등급이 낮은 시골 간이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덕양역 입구에 20~30분 간격으로 순천과 여수를 오가는 시외버스의 정류장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한때는 고급 열차였던 무궁화호가 가장 등급이 낮은 보통열차로 전락되어 매일 상행 6회, 하행 5회씩 덕양역을 경유하고 있지만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덕양장터 옆에 위치하고 있는 덕양역이 지금은 초라하지만 80여 년간 이곳의 여객과 화물을 운송하였던 역참지로서 오늘날 덕양의 발전과 마을 형성에 기여하였음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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