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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양마을 개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E010201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정현

덕양이라고 하면 행정구역상 덕양리에 속해 있는 상세동·하세동·삼거리·성재·통천·가장·흙산·내기·덕곡·가산·중승골 등 11개의 자연마을을 가리키지만, 일반적으로 덕양역과 삼거리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네 개의 마을을 말하기도 한다. 네 개의 마을을 덕양이라고 한정한 것은 당초 한 개의 마을에서 인구가 증가하고 주변에 새로이 마을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네 개 마을은 행정구역상 덕양1구·덕양2구·덕양3구·덕양6구를 말하는데, 각 마을 간의 경계가 확연하게 구분되어 있지는 않다. 간선도로를 경계로 좌우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 주민들도 마을 명칭보다는 자연스럽게 ‘덕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스스로 ‘덕양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덕양 어디 사느냐고 물으면 마을 명칭을 대기도 한다. 그러나 네 개의 마을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반드시 덕양리 ○○마을이라고 소개한다. 덕양은 1895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날 때 피난민들이 입주하게 되면서부터 마을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마을의 역사가 다른 자연마을에 비해 비교적 짧은 편이다. 따라서 도시가 그렇듯이 덕양이 갑자기 성장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형성된 지가 오래된 다른 자연 마을과는 달리 이곳에는 제당이나 정려각 등 마을과 관련한 유적이 없다.

소라면 소재지가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성장한 덕양은 여수 시가지보다는 못하지만 면에 있는 마을치고는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완전한 도시라기보다는 도농 기능이 혼재된 작은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도시 모습으로는 공립도서관·병원·약국·고층 아파트·중고차 매매업소·주유소·고등학교 등이 있고, 농촌 모습으로는 정미소·농약상·비료상 그리고 마을 주변에 농경지가 있다.

덕양이 도농이 혼재된 마을인 만큼 사람들의 생계 수단도 다양하다. 인근 공단에 출퇴근하는 근로자를 비롯하여 덕양 상가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사람, 멀리 타지역에까지 물건을 팔러가는 행상, 서비스업종에 근무하는 사람, 농업에 종사하는 등 직업의 분포가 도시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마을 사람들의 출신을 살펴보면 덕양이 철도와 도로가 개설되면서 성장한 마을인 만큼 원래부터 살았던 주민보다는 마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더 많으며, 집성촌 또는 형성된 지가 오래된 자연마을의 사람들처럼 지연이나 혈연으로 얽힌 유대감이 비교적 약한 편이나 도시 사람들처럼 이웃 간에 가깝게 지내고 같은 업종이나 동향 사람들끼리 서로 가깝게 지낸다.

명절이나 절기별로 치르는 놀이 문화도 보이지 않고 도시 사람들처럼 주말과 공휴일 문화에 익숙해 있다. 격년제로 덕양에서 개최되는 소라면민체육대회가 덕양 사람들이 지역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마을 행사이다. 여하튼 덕양은 소라면의 중심지로서 농촌 속의 작은 도시 또는 농촌의 배후 도시라고 할 수 있으며 농촌과 도시의 문화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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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양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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