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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승골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E010205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정현

중승골은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덕양6구이다. 2008년 3월 현재 230세대에 564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1998년 12월 31일 기준 인구와 대비하면 61명이 감소하였다. 중승골은 덕양 중앙을 관통하는 도로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상세동하세동이 도로변 상가와 접하고 있는 데 반해 중승골은 덕양에서는 외곽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관할은 1897년 여수군이 설치될 때 덕안면이었는데 나중에 구산면으로 바뀌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소라면으로 바뀌었다.

중승골하세동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서쪽 안 골짜기에 있어서 별도로 중승골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옛날 이곳에 중승암이라는 절이 있어서 중승골이라 했다 하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원래 양지골이나 음달골로도 불려왔는데 햇빛이 잘 들어오는 북쪽 산비탈이 양지골이며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남쪽 산비탈이 음지골이다. 이것으로 보아 중승골은 움푹 들어간 넓은 골짜기 속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덕양을 관통하는 도로와 인접하고 있는 중승골 안쪽은 원래 들판이었고 도로와 인접하고 있는 곳은 바닷가였는데, 일제강점기에 대포간척지가 조성된 뒤에 이성백을 비롯하여 10여 가구가 북쪽 산비탈에 입주하게 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니시사와라는 일본인이 이 마을 음달에 정착하여 과수원을 경영하였다. 당시 하세동은 상가로 발전한 반면 이곳 중승골은 한적한 농촌 지역으로 농가 10여 가구만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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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승골

1964년 윤상준이 서쪽 산기슭에 여천고등공민학교를 세우고 마을 한 가운데 통학로를 내었다. 그 뒤 1969년 여수시 삼일면 월내리에 호남정유공장이 들어서면서 철거민 50가구가 한꺼번에 집단 이주해 왔다. 이때부터 중승골은 인구 증가와 함께 농경지에 택지가 조성되면서 급격히 도시 마을로 바뀌게 되었다. 이어 경성빌라와 소라맨션이 건립되면서 인구가 더 늘어나 1997년 1월 1일에 덕양6구로 분구되었다. 중승골에는 공공 기관은 없고 종교 시설로 소라교회가 있다. 그 외에는 일반 주거지로서 주택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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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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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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