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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시 마을에서 초·중·고등학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E010404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정현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덕양마을에는 다른 면 소재지와 달리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가 있는 곳이다. 소라초등학교는 1921년 6월 20일 개교한 소라공립보통학교의 후신으로 당시 여수군 내에서는 여수서정보통학교와 여수동보통학교 그리고 돌산초등학교에 이어 네 번째로 생겼다. 도로변 학교 교정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큰 히말라시다가 여러 그루가 심어져 있어 일제 때 건립된 학교임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일제가 다른 면들을 제쳐놓고 소라에 공립보통학교를 세운 것은 아마도 소라면여수반도에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다른 면에 비해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21년 9월 17일 면작조합 창고를 가교사로 사용하면서 개학하여 덕양리 1222-2번지에 신축공사를 시작해 12월 4일에 준공되었다.

개교 당시 수업 연한은 4년제이고 제1회 모집 인원은 63명이었다. 초대 교장은 일본인 고가마 이치노스케였다. 교육 과목은 수신(도덕), 국어(일본어), 조선어, 산술(산수), 이과(자연과학), 창가(음악), 체조(체육), 도화(미술), 습자(붓글씨), 실습(작업) 등이었다.

1925년 4월 1일부터는 수업 연한을 6년으로 올렸는데 면 소재지 학교로서는 유일한 6년제였다.

물론 그 무렵에는 1면 1교 원칙에 따라 각 면마다 공립보통학교가 하나씩 있기는 했지만, 어느 면 학교든지 수학 연한이 4년이었기 때문에 각 면 학교에서 졸업하면 모두 소라보통학교에 와 5학년 편입 시험을 보고 입학할 수 있었다. 경쟁률도 상당히 높았다. 소라면 사람들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고스란히 그대로 올라갈 수 있어 자부심이 높았다.

신학기가 되면 율촌·화양·삼일·쌍봉·돌산에서 편입 시험을 보고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요즘 70대치고 보통학교를 6학년이라도 제대로 나온 사람이라면 소라초등학교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다. 학생들 나이도 10여 세의 어린 소년들로부터 20여 세가 넘는 나이든 학생까지 섞여 있는 등 각양각색이었다. 일제 때 소라면이 다른 면들보다 일찍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곳보다 먼저 보통학교가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교사진은 일본인들이 많았지만 한국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해방 당시 교사 7명 중 5명이 여선생이었다. 남자 선생이 두 명뿐이었던 것은 태평양전쟁이 일어나 일본인 남자 선생들이 군인으로 뽑혀갔기 때문이었다. 1945년도에는 재학생 수가 736명이었고, 한창 많을 때인 1970년만 하더라도 1,645명에 이르렀다. 현재까지의 졸업횟수는 85회이며 졸업생 수는 8,500명에 이르고 있다. 2008년 현재 11학급에 204명의 학생이 있으며 전담 교사는 14명이다.

학생 수가 많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학교 체육대회가 열리게 되면 덕양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당시 다른 지역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시골학교 체육대회는 학생들만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를 비롯하여 마을 사람들도 참가하기 때문이다. 매년 5월 1일에 열리고 있는데 분위기는 예전과 같지 않다. 소라면 내 학생들이 줄어들게 되면서 독립 학교였던 신흥초등학교·소라남초등학교·소라서초등학교·소라중앙초등학교 등이 소라초등학교의 분교로 편입되었고, 화정면송여자분교장도 편입되었다.

덕양이 일제시대부터 여수읍에 버금가는 마을이었음에도 1960년대까지 중학교가 없었다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이에 덕양이 여수반도의 중심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등학교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윤상중이 1964년 11월 17일 중승골에 여천고등공민학교를 세웠다. 그러자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정규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학생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그러나 2년 뒤 사립중학교가 설립되어 학생들이 줄어들자 폐교되었다.

여양고등공민학교 설립 2년 뒤에 설립된 사립중학교가 춘당 김주식이 세운 여양중학교이다. 김주식은 소라면에 중학교가 없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상급 학교에 진학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하여 1966년 11월 19일 덕양리 1058번지에 춘당학원을 설립하였다. 1967년 2월 21일 여양중학교를 9학급으로 인가받아 개교하였으며, 11월 29일에 15학급으로 늘어났다. 2년 뒤인 1969년 10월 28일에 또 18학급으로 인가되었다. 1970년 2월에는 처음으로 128명의 학생을 배출하였고, 개교 이래 2006년 2월까지 8,791명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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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양중고등학교 교사 전경

여양중학교는 국도와 연결되는 덕양삼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소라면만 아니라 인근 쌍봉면이나 화양면 등지에서도 많이 취학해 와 교세는 날로 늘어나는 편이나 근래 들어서는 면에 있는 중학교라는 한계 때문에 우수한 학생들이 여수나 순천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양중학교에서는 교내 체육대회 대신에 매년 10월 말 2일간에 거쳐 여양중학교 예체능발표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고등학교로는 여양고등학교가 있으며, 여양중학교와 같은 재단인 춘당학원이 운영하고 있다. 농촌 중학생들의 진학을 돕기 위해 1969년 11월 22일 여양실업고등학교로 설립했다가 1971년 12월 21일 여수종합고등학교로 개칭했다. 근년에 와서는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를 선호하는 사회 풍토에 따라 1987년 3월 1일부터 여양고등학교로 새로 출발하였다. 매년 5월 중 2일에 거쳐 학교 축제인 춘당제를 거행하고 있다. 근래에는 농어촌 지역 출신 학교 출신자에게 대학 입학 특례가 적용되어 여양고등학교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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