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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상 40년 유병길 할머니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E020201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정현

오후 늦을 무렵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하세동 경로당 옆을 유병길 할머니가 농기구를 유모차에 싣고 밀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 가시냐’고 물었더니 대뜸 ‘오늘도 밭에 가서 일해야 한다.’며 대답하면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요즈음은 행상 안하시냐고 했더니 행상 안한 지가 몇 년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 오랜만에 뵈었는데 경로당에 가서 행상했던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했더니 밭에 가야 한다면서 손을 내저었다. 통사정 끝에 겨우 시간을 내 주면서 빨리 하라고 재촉했다.

할머니는 경로당에 들어가 앉아 계셨지만 밭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역력했다. 할머니는 옛 기억을 가다듬으면서 행상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다. 할머니의 연세는 금년(2008년) 75세이며 고향은 전라북도 무주이다. 수십 년 농사일과 행상을 했던 탓인지 허리도 약간 굽은 데다 피부가 거칠어 보였다. 할머니의 얼굴과 억양은 그 동안 세상 풍파를 겪고 어려운 난관을 극복한 모습이었다.

만 15세에 출가하여 고향 무주에서 살았다. 출가한 지 2년이 지나서 한국전쟁을 겪었는데, 식량 공출이 있어서 한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출가해서 만 20세가 되기 전부터 생활비 마련을 위해서 종일 무명베를 짜서 물감을 사다가 물을 들여 장에 내다 팔았는데, 이때부터 행상이 시작된 셈이었다.

그 후 무주에서 잡화 가게를 운영하였는데 운이 좋은 날에는 막걸리 30여 통이 팔리기도 하였다. 할머니 말에 의하면 가게가 잘 운영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은 이것저것 손을 대다가 사업에 실패하여 가게 운영을 할 수가 없게 되자 생활이 어려워진 할머니는 행상에 나서게 되었다. 산지에서 싸게 사다가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팔았는데 당시에 내다 판 농산물로는 무주에서 생산된 인삼, 완주군 삼례에서 나온 대추 그리고 순창의 생강과 말린 고추였다.

주로 내다 파는 곳은 전라선 철로를 따라 남원·곡성·광양·덕양 장터였다. 어느 날 예전과 마찬가지로 농산물을 받아서 덕양장에 왔는데 이곳에서 마늘·생강·고추 등이 잘 팔리는 것을 보고 만 39세가 되는 해인 1972년에 가족이 아예 덕양으로 이사를 와 버렸다.

덕양에 살면서 행상을 계속했는데 전라북도나 충청도 등지에서 물건을 받아서 전라도 일대 오일장을 돌면서 팔았다. 1일과 6일은 광양장, 2일과 7일은 순천 창촌장, 3일과 8일은 여수 덕양장, 4일과 9일은 여수장, 5일과 10일에는 순천장에 나갔다. 여러 장터를 돌아가면서 오일장을 돌다보니 거의 연중 행상하는 셈이었다. 그날의 장터가 여의치 않으면 다른 5일장에도 가기도 하였다.

일정한 가게가 없이 장터에서 좌판을 차린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장사가 잘 되면 그곳 상인들이 쫓아내기도 하였는데 이럴 때는 곧 간다고 하거나 알았다고 하면서 끝까지 버티면서 농산물을 팔아 치웠다고 한다. 돈을 벌기 위해 덕양까지 내려와서 12년 가까이 열심히 행상을 했지만 크게 생활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행상 대신에 뻥튀기와 튀밥을 파는 것이 더 낫겠다 싶어 기술을 배우려 했으나 객지에서 그 기술을 가르쳐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작정 고향 무주에 가서 뻥튀기와 튀밥, 한과를 만드는 점포를 찾아가 무주에서는 장사를 안 한다는 조건으로 사정을 해서 일주일 동안 기술을 배워 덕양으로 돌아왔다.

가게도 없이 덕양장터 노상에서 남편은 뻥튀기와 튀밥을 만들어서 팔고 할머니는 삼일면 일대 구멍가게에 뻥튀기와 튀밥을 직접 내다 팔았는데 외상은 없고 현금으로만 거래하였다. 할머니는 행상에서 도매업자가 된 격이다. 덕양집에서는 따로 주문을 받아 한과를 만들어 팔았는데 20일 정도 만들어 팔았더니 아들 대학 학자금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20년 가까이 남편과 함께 만들어 팔면서 가족 생계를 꾸려 나갔다. 6년 전 남편이 돌아간 후부터 이 일을 그만 두었다. 지금은 밭 수확물을 조금씩 내다 판다. 할머니는 경로당보다는 밭일이 일상이었다. 경로당에 가서 행상 할머니를 찾으면 밭에 갔다고 한다. 할머니들이 이구동성으로 “그 할머니는 안 해 본 장사가 없지. 생활력도 강해.”라고 말한다. 오늘도 할머니는 유모차에 농기구를 싣고 밭에 가고 있었다. 이것이 유병길 할머니의 일과였다.(유병길, 75세, 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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