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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면의 유일한 술도가 소라주조공사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E030302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정현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소재지인 덕양에서 상가가 형성되어 있는 상세동하세동 사이의 간선도로를 걸어가면 장터 입구에 허름한 슬라브 2층 건물이 있는데, 소라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막걸리 주조장이다. 아직도 건물에는 지을 당시에 외벽에 붙였던 타일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지을 당시에는 고급스런 건물이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지금은 막걸리가 소주나 맥주에 밀려 있지만 한때는 농촌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호 식품 중의 하나였다.

소라주조공사 의 전신은 1928년 일본인이 세동마을에 차린 쇼오도메만치[五月女滿治] 술도가라고 할 수 있다. 이 술도가는 광복 후 순천 유지에게 넘어가 운영되었다가 1963년 소라면 재력가인 김주식이 인수하였다. 김주식은 재력가답게 1964년 술도가가 있었던 자리 길 건너편에 새 건물을 지었는데, 오늘날의 소라주조공사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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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주조공사 건물 전경

1968년부터 지금의 대표자인 김양규 사장이 부친으로부터 경영권을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4년에는 1면 1주조장 정책에 따라 덕양주조장과 현천주조장이 합병되고 주조장 명칭도 소라주조공사로 바뀌게 되었다. 합병 당시에는 소라주조공사의 지분이 양분되어 있었는데 1979년 김양규 사장이 나머지 지분을 인수하였다.

막걸리의 원료는 곡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정부의 식량 정책에 따라 자주 바뀌게 되었다. 그 때마다 사용하는 원료에 따라 맛과 알코올 도수도 달랐다. 1960년대에는 보리와 밀가루를 섞어 만들었고 1970년대에는 밀가루를 사용하였다가 1976년에 통일벼 보급으로 쌀 생산량이 증가하여 정부 비축 물량이 많아지자 쌀을 원료로 만든 쌀막걸리가 나왔다.

처음 나올 때에는 밀가루 막걸리보다 색깔이 맑고 깨끗하여 인기가 높았지만 도수가 8도인데다 뒷맛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문제점 때문에 다시 쌀과 밀가루 원료를 혼용하였고, 도수도 6도로 낮춘 막걸리가 보급되었다. 지금은 쌀과 밀가루 혼용 비율은 각각 70% 대 30% 정도이다.

막걸리는 농주 또는 노동주라고 할 정도로 일할 때는 반드시 필요한 식품 겸 음료였다. 1970대 초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에는 막걸리 소비가 많아서 호황을 누리기도 하였으며, 농한기에는 대체로 감소하지만 농번기에는 증가하였다. 농번기라도 가을철 수확기보다는 초여름 모내기철에 막걸리 소비가 많았다. 도시이건 지방이건 간에 주조장을 운영한다고 하면 지역 유지급에 속했고, 자녀들도 외지로 유학 보낼 정도여서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주조장은 전망도 있고 영업이 잘 되는 업종 중의 하나였다.

소비자의 취향이 바뀌면서 막걸리 소비는 급격하게 감소되었다. 막걸리 소비가 많은 모내기와 추수 작업 등이 기계화된 데다 웬만한 공사장에서도 중장비로 작업을 하는 등 농주 또는 노동주로서 역할이 떨어지게 되었다. 공사장에서는 일하는 사람들도 막걸리보다는 맥주나 음료수를 선호하였다.

특히 여수는 해산물이 풍부하여 횟감의 반주로는 막걸리 대신에 소주였다. 주조업이 호황일 때에는 소라주조공사에서 생산량이 하루 100여 말까지 이르렀으나 근래 들어서는 하루 15말 정도에 머물고 있을 정도로 전망이 매우 어둡다. 막걸리를 주로 마시는 노년층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젊은 계층은 막걸리보다는 맥주나 소주를 선호하고 있다.

6~7년 전부터 막걸리의 영업 지역 제한이 해제되면서 덕양에까지 여수에서 생산된 막걸리가 유입되고 있다. 큰 행사를 덕양에서 치르게 되면 당연히 덕양막걸리를 마셨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들어오는 막걸리가 이곳에서 소비되고 있다. 갈수록 막걸리 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덕양막걸리 판매가 매우 힘들다고 한다.

소라주조공사에는 기사 1명이 직접 영업을 하고 있는데, 거래처에 막걸리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소라면 일대를 돌면서 확성기를 통해 판매하고 있는데 이것마저 여의치 않다고 한다. 막걸리도 향토음식처럼 그 맛에 길들여지면 익숙해지기 마련인데 아직도 덕양막걸리를 찾는 사람은 소라면 사람들과 예전에 마셔보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김양규, 66세, 소라주조공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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