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2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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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琴𢢜 |
영어음역 | Geum Eop |
이칭/별칭 | 금변(琴忭),언신(彦愼),만수재(晩修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황만기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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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
성별 | 남 |
생년 | 1557년(명종 12) |
몰년 | 1638년(인조 16) |
본관 | 봉화 |
대표관직 | 용양위부호군 |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수재(晩修齋). 아버지는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어머니는 횡성조씨(橫城趙氏) 조대춘(趙大春)의 딸, 처는 순흥안씨(順興安氏) 안각(安恪)의 딸이다. 중년에 율인(律人)의 동명(同名)을 피해 ‘금변(琴忭)’으로 이름을 고쳤다가 나중에 다시 처음의 이름으로 고쳤다. 형은 월담(月潭) 금경(琴憬), 동생은 망월헌(望月軒) 금개(琴愷)이다.
[활동사항]
금업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서 태어났으며, 외숙인 월천(月川) 조목(趙穆)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89년(선조 22)에 형 금경과 함께 나란히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01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내직으로 성균관전적을 거친 후 사간원정언에 세 번, 병조좌랑과 병조정랑에 각각 여섯 번, 분병조정랑에 한 번, 내자시정(內資寺正)에 한 번, 사헌부장령에 세 번, 분승지(分承旨: 대비전인 서궁의 승지)에 한 번 제수되었다.
외직으로는 흥해군수, 김해부사, 창원도호부사를 역임하고 나중에 용양위부호군에 제수되었다. 금업은 덕행과 기량이 뛰어났으며 문장과 글씨 또한 훌륭하였다. 영주(榮州) 오력촌(梧櫟村)에서 처가살이한 적도 있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기 위해 다른 곳에 가 있던 것을 제외하고는 늘 고향인 예안면 부포리에서 지냈다.
[저술 및 작품]
문집 『만수재고(晩修齋稿)』가 형 금경, 동생 금개, 금각, 금개의 아들 낙포(洛浦) 금성휘(琴聖徽)의 문집과 함께 『나산세고(羅山世稿)』로 합철되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