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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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喜瑗 |
영어공식명칭 | Seo Huiwo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자선사업가.
[개설]
서희원(徐喜瑗)[1854~1926]은 1854년 7월 25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남학교와 명신학교의 운영을 지원하는 등 대구 지역의 근대 초등교육과 여성 교육 발전에 기여하였다.
[활동 사항]
서희원은 1906년 개신교 신자가 되었다. 1920년 대남학교(大南學校)[현 대구종로초등학교]가 경영난으로 폐교될 위기에 처하자 김울산[5,000원]·이규열[1,000원]등과 함께 1만 원을 기부하여 학교를 살렸다. 대남학교는 서희원 등의 기부로 현 중구 수동에 건평 254평 규모의 2층 양옥을 지어 학교 교사로 사용하였고, 서희원의 이름을 따서 교명을 희원학교(喜媛學校)로 변경하였다. 대남학교는 1902년 안의와 선교사가 남성정교회(南城町敎會)[현 대구제일교회] 내에 세운 기독교 계열의 사립 교육기관이었다.
서희원은 1921년 대남유치원장에 임명되었고, 1922년에는 경영난을 겪던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를 인수하여 운영하였다. 명신여학교는 1910년 8월 26일 대한애국부인회가 설립한 대구 유일의 여성 교육기관이었다. 명신학교는 1925년 복명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2020년 현재 대구복명초등학교로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 서희원은 1926년 12월 10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