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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1662
한자 旌閭
영어의미역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걸순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에 살았던 충신·효자·열녀를 표창하기 위해 나라에서 내린 상징물.

[개설]

정문은 일명 홍문(紅門) 또는 작계(綽契)라고도 한다. 액(額)에다 충(忠)·효(孝)·열(烈) 등의 글자를 새겨 표창의 종류를 표시하고 그 이름과 직함을 새겼다. 정려의 사례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효녀 지은(知恩)에 대한 포상 기록이 처음이다. 고려시대에 와서 역대 왕들이 효자와 열녀 등이 사는 마을 입구에 정표를 하여 미풍양속을 장려하고자 하였다.

정문은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할 때 공신들을 표창하기 위해 사당을 짓도록 한 것이 최초이다. 효자와 열녀에 대한 정문이 건립된 것은 1431년(세종 13년)이 처음이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래 정려 정책을 시행하였고, 『경국대전(經國大典)』장권조(獎勸條)에 그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현황]

음성에 있는 정문은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 건립된 박순(朴淳)의 충신문이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음성에는 조선 초기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신문 7개, 효자문 20개, 열녀문 6개 등 33개가 건립되어 있다. 1966년 원남면 마송리고용진 효자문이 건립되는 등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건립되어 왔다.

정문은 충신문·효자문·열녀문·효부문 등이 있다. 충신문으로는 태종 때 함흥차사로 갔다가 화를 당한 박순[?~1402], 임진왜란 때 순국한 권길, 금산 전투에서 전사한 이구령[?~1592], 의병을 일으켜 순국한 장충범[?~1597], 병자호란 때 전사한 김종립[?~1636], 이인좌의 난 때 전사한 남연년[1653~1728] 등의 문각이 있다.

효자문으로는 조유안[1605~1672]·민동량[1660~1732]·민휘계[1645~1687]·민정현[1783~1812]·신유[1653~1729]·이광하·조용하·이식후·이진도·고용진·송광도·김순·박호원·박정규·정운영·권국화·민해준·정국량·윤기손·윤기진 등의 효행을 기리는 문각이 있으며, 대개 목조 정문 1간, 측면 1간의 구조로 되어 있다.

열녀문으로는 장동엽의 처 청주이씨, 이경립의 처 순흥안씨, 박순의 처 장흥임씨, 권종원의 처 진주정씨, 윤득성의 처 청풍김씨 등의 것으로, 남편이 죽자 곧 뒤를 따르거나 3년 상을 마치고 자결함으로써 정문이 내려졌다.

군자감판관 김선경의 처 성주이씨는 임진왜란 때 피난중 왜적에게 희롱당한 것을 수치로 여겨 자진하였고, 연진행의 처 순흥안씨는 병자호란 때 외적이 집에 침입하자 남편과 함께 싸우다 죽었다. 조용하의 처 평택임씨는 단지수혈을 하여 남편을 소생시켰다. 이밖에 효부로서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한 장택한의 처 장수황씨의 효부문과 곡산연씨 효열각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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