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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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銅器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곽장근 |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청동기시대의 유적과 유물을 근거로 밝혀진 청동기시대 역사와 문화.
[개설]
우리나라에서 기원전 1,00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청동기시대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중국 북방 문화의 영향을 받아 안정적인 농경 생활의 시작, 간석기[磨製石器]의 본격적인 사용, 사회 복합도의 증가가 한층 뚜렷해진다. 그리고 토기의 표면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민무늬 토기[無文土器]가 주종을 이루어 달리 ‘민무늬 토기 시대[無文土器時代]’라고도 불린다. 기원전 700년경부터는 이전의 화전 농법에 의한 밭농사에 비해 거의 영구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정착 농경인 논 농사로 생활 방식이 바뀐다. 이제까지 군산 지역에서 청동기시대 고인돌[支石墓]과 집자리[住居地], 조개무지[貝塚] 등이 조사되었다.
[군산 지역의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고인돌과 돌널무덤[石棺墓], 독무덤[甕棺墓] 등 다양한 무덤이 새롭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특히 고인돌은 함경북도를 제외한 우리나라의 전 지역에 골고루 자리하고 있으면서 고창군과 화순군 등 호남 지방에 더욱 밀집되어 있다. 그리고 하나만 있는 경우도 간혹 확인되고 있지만 대부분은 수기 내지 수십 기씩 무리를 이루고 있다. 고인돌의 상석은 정연하게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면서 주변의 하천 혹은 산줄기의 방향과 평행하게 장축방향을 두고 있는 점에서 특징을 보인다. 군산에는 1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고창과 부안 등 서해안의 다른 지역에 비해 그 밀집도가 매우 낮다. 이 시기의 유적은 오성산(五聖山)[227m]을 중심으로 장계산(長溪山)[110m]부터 영병산(領兵山)[120m]까지 뻗은 산줄기, 개정면과 서수면 일대에 한층 밀집되어 있다.
군산시 성산면 도암리와 고봉리, 서수면 관원리에서 청동기시대의 송국리형 집자리가 조사되었다. 오성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도암리에서는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마련된 원형계 집자리에서 민무늬토기 조각과 점토 띠토기[粘土帶土器] 조각이 혼재된 상태로 출토되었다. 고봉리와 관원리에서는 원형계 혹은 방형계 집자리의 중앙부에서 둥근 형태의 구덩이가 확인되었으며, 토기류와 석기류가 공반된 유물은 직립 구연과 평저인 송국리형 토기가 주종을 이루었다. 호남 지역 송국리형 주거 문화를 크게 2단계로 구분한 다음 송국리형 토기를 Ⅰ단계로 점토 띠토기를 Ⅱ단계로 설정한 바 있다. 종래의 연구 성과에 대입시켜 보면, 군산의 방형계 혹은 원형계 집자리는 송국리형 집자리가 가장 성행했던 기원전 5세기를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특히 비응도 조개무지에서 머리가 없는 사람 뼈가 모습을 드러내 청동기시대가 달리 ‘전쟁의 시대’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2,000년 이상 청동기 시대 인골이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된 것은 굴이나 조개 껍질에 다량으로 함유된 알칼리성 때문이다. 개정면 아동리와 임피면 축산리에서 풍화 암반층을 장방형으로 파내고 그 안에 판석형 할석을 잇대어 놓은 다수의 돌널무덤와 독무덤이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의 묘제가 모두 공존함으로써 군산이 당시 문물 교류의 허브였음을 암시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