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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벌포전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437
한자 伎伐浦戰鬪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김종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670년연표보기 - 기벌포전투 발발
종결 시기/일시 676년 11월연표보기 - 기벌포전투 종결
성격 나당 전투
관련 인물/단체 문무왕|설인귀|시득

[정의]

676년(문무왕 16) 11월에 현재의 전라북도 군산시 금강 하구 유역 일대에서 신라군과 당나라군이 싸운 전투.

[개설]

신라와 당이 676년(문무왕 16) 11월에 금강 하구 유역 일대에서 싸운 전투로 당은 신라를 병합한 후 한반도 전체를 차지할 야욕을 가짐에 따라 신라는 당과 전쟁을 벌였다. 이 기벌포 싸움에서 당은 대패하여 한반도에서 물러났다.

[역사적 배경]

신라와 당나라 군대는 660년에 연합해 백제의 사비성(泗沘城)을 함락시켜 백제를 멸망시켰고, 다시 668년에는 신라와 당나라 군대가 평양 근처에서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당나라는 백제와 고구려 지역을 직접 지배하고 신라까지 복속시키려 하면서 신라의 자주성을 빼앗았다. 동시에, 고구려의 평양 이남과 백제 땅을 신라에 주기로 약속한 영토 분할 약정을 위배하였다. 이에 격분한 신라는 당나라에 선전 포고를 하고 대당 전쟁(對唐戰爭)을 감행하였다.

[경과]

신라의 대당 전쟁은 670년(문무왕 10)부터 676년(문무왕 16)까지 7년간 지속되었다. 신라는 북쪽 경계로 남하하는 당나라 군대를 맞아 675년(문무왕 15) 천성(泉城)과 매소성(買肖城)에서 크게 이겼다.

당은 육로로 신라의 한강 방어선을 돌파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고 676년(문무왕 16) 11월 금강 하구 기벌포에 설인귀(薛仁貴)가 지휘하는 당의 함대를 침입시켜 신라를 공격하였다. 기벌포는 백제의 수도인 부여 방어를 위해 중시되던 지역이다. 이곳은 강의 하구라기보다 바다의 만(灣)이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지역으로 기벌포를 장악하면 서해를 남북으로 양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해의 제해권과 관련해서도 아주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다.

신라는 673년(문무왕 13)에 함선 1백 척과 해군을 서해에 배치시켜 이 지역을 지키고 있었다. 676년(문무왕 16) 설인귀의 당나라군이 기벌포로 내려오자, 사찬(沙飡) 시득(施得)이 함선을 이끌고 기벌포에서 싸웠으나 패배하였다. 그러나 크고 작은 전투 22번에 걸쳐 결국 당나라군 4천여 명의 목을 베고 승리하였다.

[결과]

기벌포전투에서 당은 대패하여 한반도에서 물러났고, 신라는 대동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지역을 차지하여 삼국 통일을 완성하였다.

[의의와 평가]

신라의 삼국 통일은 고구려의 영토를 상당부분 상실했다는 점에서 영토적인 면에서 분명 한계가 있었으나, 한반도 내에서 민족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한민족 단일국가 수립의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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