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5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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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곽장근 |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에 자리하고 있는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가마터.
[개설]
가마터[窯址]는 토기·도자기·질그릇·오지 그릇·기와 등을 구워내는 시설로서 달리 가마사지·점터 등으로도 불린다. 가마는 크게 한데가마[露天窯]와 굴가마[登窯]로 나눈다. 선사 시대에는 토기를 가마 속에 넣지 않고 그대로 맨 땅 위에 쌓은 후 그 위에 많은 장작이나 섶을 덮고 불을 질러 구워내는 방법도 사용하였다. 굴가마는 연료를 연소시키는 방인 연소실(燃燒室)과 소성될 토기가 야적되는 방인 소성실(燒成室)로 구성된다. 소성실은 밀폐 가능한 시설물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이 연료와 토기를 함께 야외에 쌓아 놓고 굽는 한데가마[노천요]와 다른 점이다. 우리나라는 한데가마에서 화력을 낼 수 있는 굴가마가 사용되면서 도자기 기술도 급진적으로 발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요지의 현황]
이제까지의 지표 조사를 통해 군산시에는 21개소의 가마터[窯址]가 분포된 것으로 밝혀졌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내흥동 가마터를 중심으로 옥구읍·대야면·회현면에 각각 1개소, 옥산면과 임피면에 각각 2개소, 나포면과 성산면에 각각 4개소, 서수면에 5개소의 가마터가 분포되어 있다. 선사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의 토기 가마터는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모두 21개소의 가마터는 고려 시대 가마터 1개소와 조선 시대 가마터 16개소, 군산시 서수면 원동 마을 등 4개소의 옹기 가마터로 구분된다.
[요지의 성격]
2001년 구제 발굴에서 고려 시대 초기 굴가마로 밝혀진 내흥동 가마터를 제외하면 대부분 지표 조사에서 그 존재만 확인되어 가마터의 구조와 그 성격을 상세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 후기 백자를 생산하던 가마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여기에 일부 옹기 가마터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백자부터 옹기까지 군산의 도자 문화를 연구하는 데 값진 유적으로 판단된다. 앞으로 군산 가마터의 분포 양상과 그 성격을 심층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종합적인 지표 조사와 발굴 조사가 절실히 요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