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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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余方里古墳- |
이칭/별칭 | 여방리 기린마을 고분떼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여방리 산71-2도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조명일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4년 10월~1995년 2월 - 서해안 고속 도로 건설 공사의 일환으로 여방리 고분떼 C에 대한 발굴 조사가 진행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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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여방리 고분떼 - 전북 군산시 성산면 여방리 산71-2도 일원 |
성격 | 고분떼 |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여방리에 위치한 삼국~조선 시대 고분떼.
[위치]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에 있는 대명산[126m]에서 북쪽으로 뻗어 있는 산줄기의 동쪽 가지 능선상에 세 개소의 고분떼가 분포되어 있는데, 고분의 분포권에 따라 여방리 고분떼 1, 2, 3으로 명명되었다.
여방리 고분떼 1은 군산시 성산면 여방리 원여방 마을의 북쪽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하며, 여방리 고분떼 2는 원여방 마을의 남쪽에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는 나지막한 구릉 일대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여방리 고분떼 3은 여방리 기린 마을의 동쪽에 해당되는데, 현재 서해안 고속 도로가 관통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세 개소의 고분떼 중 여방리 고분떼 3은 서해안 고속 도로 건설 공사의 일환으로 1994년 10월부터 1995년 2월까지 원광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수혈식 석곽묘 13기, 횡혈식 석실분 28기, 합구식 옹관묘 4기 등이 확인되었으며, 무덤의 내부에서는 백제 시대 토기류와 철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을 근거로 무덤의 조성 시기는 대체로 5세기 중엽에서 7세기로 편년되었다.
[형태]
수혈식 석곽묘는 장축 방향이 산 경사면과 직교하고 있으며, 모두 지하에 장방형의 석곽을 안치하였다. 부정형 할석을 이용하여 무덤을 구축하였으며,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에 가깝다. 무덤의 바닥은 암반을 다듬어 사용한 것과 전면에 잔돌을 깐 것이 확인된다.
횡혈식 석실분은 연도의 방향이 좌측이나 우측에 편재된 것과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나누어진다. 편재된 연도를 갖춘 무덤은 축조 재료가 자연석이거나 혹은 약간 다듬은 면석을 사용한 반면에, 중앙에 연도를 갖춘 무덤은 대부분 잘 다듬은 판석을 사용하였다.
[출토 유물]
수혈식 석곽묘에서 백제 시대 토기류와 쇠 칼, 청동제 귀고리, 옥 등이 출토되었으나, 횡혈식 석실분에서는 유물이 거의 출토되지 않았다.
[현황]
현재 여방리 고분떼 1과 2는 임야와 대밭으로 형성되어 있어, 육안으로 고분의 현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의 제보에 의하면 “이곳에서 도굴이 성행했다”고 한다. 고분떼 내에서는 지금도 삼국 시대 회청색 경질 토기편 및 고려 시대 도기편, 분청 사기편 등이 수습되고 있어 삼국 시대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고분이 축조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여방리 고분떼 3은 서해안 고속 도로가 통과하면서 대부분의 없어지기는 했으나, 고속 도로의 동쪽 구릉 지대에는 거의 훼손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굴 조사된 고분 외에 더 많은 고분이 존재할 것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여방리 고분떼 1과 2는 비록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입지나 현황 등을 볼 때, 석곽묘 및 석실분 등 수 십 기의 고분이 발굴 조사된 여방리 고분떼 3과 그 양상이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여방리 고분떼는 인근의 나포리 고분떼·장상리 고분떼, 익산 입점리 고분 등과 함께 군산 하류 지역의 백제 세력 진출 과정 및 성격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학술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