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6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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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선사/청동기,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조명일 |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에 있는 청동기 시대~조선 시대에 이르는 무덤 유적.
[개설]
고분이란 과거 죽은 사람들을 위해 수행된 매장 의례 행위의 결과로 남겨진 물질 자료를 뜻하는 광의적 개념이지만, 통상적으로는 무덤의 고총화가 이루어지는 초기 국가~삼국 시대의 무덤을 한정하여 고분이라 하며, 여기에 통일 신라 시대의 지배층 무덤도 고분 또는 고총이라 한다. 고려 시대 이후의 무덤은 보통 민묘 또는 분묘라 불리 우는데, 역사·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경우에는 학술적인 의미에서의 고분으로 칭하기도 한다.
역사상 무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로 알려져 있으나, 실물 자료가 전무한 실정이며, 신석기 시대 무덤도 집단 무덤과 일부 조개더미에서 인골이 발견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형화된 무덤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이후 청동기 시대에는 토광묘, 석관묘, 옹관묘, 고인돌 등의 다양한 무덤의 형태가 확인되며, 초기 국가 시대에 들어서면, 무덤이 보다 대형화되면서 분구묘, 석실분, 석곽묘, 토광묘의 형태로 조성되기 시작한다. 고려 시대에는 토광묘와 횡구식 석곽묘로 무덤의 형태가 단순화되고, 이후 조선 시대에는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는 토광묘의 형태로 획일화된다.
고분은 여타 유적에 비해 전통성과 보수성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무덤의 구조적 속성 외에 인간의 사상이나 신앙까지 투영되어 있으며, 그 지속 기간이 매우 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고분의 이러한 특징으로 말미암아, 구조와 부장품을 통해 피장자의 출신이나 신분을 유추할 수 있으며, 나아가 한 집단의 문화적 정체성을 이해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고분 유적의 연구는 역사·고고학적으로 여타 유적에 비해 매우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현황 및 특징]
지금까지 군산 지역에서는 청동기~조선 시대 무덤이 다양하게 확인되고 있다. 물론 비응도 등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에서 인골이 확인된 경우도 있지만 극히 제한적이다.
군산 지역에 본격적으로 무덤이 조영되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 시대로, 고인돌과 석곽묘, 옹관묘가 확인되고 있다. 고인돌은 정식 발굴 조사를 실시한 예는 없지만, 지표 조사를 통해 오성산 인근에 다수의 고인돌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석곽묘와 옹관묘는 군산 아동리·축산리 유적이 대표적인데, 석곽묘 수 십 기를 비롯하여 단옹식 옹관묘가 확인되었다. 석곽묘에는 마제 석검을 비롯하여 다수의 토기류가 출토되었으며, 옹관은 구연부가 짧게 외반되고 동체부가 풍만한 이른바 ‘송국리식’ 토기를 사용한 것으로 특징적인 것은 바닥면에 구멍이 뚫려 있다.
초기 철기 시대에는 토광묘가 조영되는데, 군산 둔율 유적이 대표적이다. 둔율 유적에서는 토광묘 1기가 확인되었는데, 여기에서 흑도 장경호 2점이 확인된 바 있다.
원삼국 시대 마한의 영토에 해당되는 군산 지역에는 다수의 무덤이 축조되는데, 대표적으로 조촌동 유적, 축동 유적, 산월리 유적, 미룡동 고분 등이 있다. 조촌동 유적에서는 주로 금강 이북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는 주구 토광묘[토광묘를 중심으로 그 위쪽에 눈썹형 또는 반타원형의 도랑이 둘러진 무덤]가 확인되었다. 축동 유적과 산월리 유적에서는 성토된 분구 내에 무덤을 조성한 분구묘가 확인되었는데, 특히 축동 유적에서 군산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분주 토기가 출토되어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최근에 임피면 축산리에서도 분주 토기가 출토된 일이 있다.
이와는 별개로 2012년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미룡동 고분은 주변에 도랑[주구]을 둘러 묘역을 구획하고 그 내부에 매장 주체부 10기를 안치한 특이한 형태의 무덤이 조사되었다. 또한 여기에서 출토된 유물도 기존에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특징적인 것들이 많아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이 고분은 지금까지 군산 지역에 확인된 초기 국가 고분 중 그 조성 시기가 가장 빠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향후 군산 지역 뿐 아니라 호남 지역의 초기 국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군산 지역의 삼국 시대 고분은 횡혈식 석실분 7기와 수혈식 석곽묘 3기가 조사된 산월리 유적이 대표적이며, 이에 더해 조촌동·도암리·신관동·나포리·여방리·장상리 유적 등에서 백제 시대 무덤이 조사되었다. 산월리 유적에서 조사된 횡혈식 석실분은 그 형태 및 구조가 초기 유형에 해당되는 것으로 백제 한성기와 웅진기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백제 토기를 비롯한 3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현재까지 군산 지역에 확인되고 있는 백제 횡혈식 석실분 중 그 조성 시기가 가장 빠른 것으로 군산 지역의 백제 진출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밖에 나포리·장상리·서포리·여방리 등 금강의 남안에서 다수의 횡혈식 석실분이 조사되었는데, 대체로 단면 육각형의 이른바 ‘능산리형 석실분’으로, 백제 사비기 무덤의 박장화로 인해 출토 유물은 빈약하지만, 인근 익산 입점리 유적과 함께 금강 하류 지역의 백제 고분 문화를 이해하는 데 값진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군산 지역의 고려~조선 시대 무덤은 산발적으로 확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미룡동 유적, 대명리 유적과 같이 집단 묘역이 확인된 예도 있다. 미룡동 유적에서는 30여기의 무덤이 조사되었는데 대부분 토광묘로 확인되었다. 무덤의 내부에서는 고려 시대 청자와 분청 사기, 조선 시대 백자 등의 자기류와 청동기류 등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고려~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평가 및 의의]
군산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북쪽의 금강, 남쪽의 만경강, 서쪽의 서해를 끼고 있는 지정학적 이점으로 인해, 200여 기의 조개더미가 말해주듯 해양 문화의 중심지로 급부상하였다. 또한 삼국 시대에는 백제 웅진기 이후, 중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가교임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군산 지역에는 다양한 형태의 고분이 축조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와 연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미진한 상황이며, 관리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하루빨리 유적에 대한 보존 대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되며, 이와 더불어 활발한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근대 문화유산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군산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