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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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伐草 |
이칭/별칭 | 금초(禁草)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집필자 | 이하범 |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음력 팔월 추석 이전에 조상의 묘에 자란 잡초를 베고 묘 주위를 정리하는 풍속.
[개설]
벌초를 하는 시기는 봄, 가을 2번하는 것이 보통이다. 봄은 한식, 가을에는 추석 때 벌초를 한다. 가을 벌초는 추석 몇 주 전에 미리 벌초를 하는 경우가 있다. 벌초의 대상이 되는 묘는 가깝게는 부모와 조부모, 더 올라가면 선산에 모셔진 모든 조상님들을 포함하게 된다.
[연원 및 변천]
벌초의 기원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으나 유교의 관혼상제에서 시제와 묘제를 언급하고 있고, 특히 성리학에서 묘제를 중시하는 부분 등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한국 사회에 유교가 보급되면서 벌초를 하는 관습도 같이 들어온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실제 성리학이 보급된 조선 시대에는 조상님들 묘에 잡풀이 무성한 것 자체도 불효로 인식했다.
[절차]
벌초는 전국적으로 행하는 미풍양속으로 고향 근처에 사는 후손들이나 외지에 나간 후손들이 찾아와서 조상의 묘에 자란 풀을 제거하고 묘 주위를 정리한다. 일부 지역에선 금초(禁草)라 부르기도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오래 전부터 특정 성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가문의 선산이 오래된 경우에는 매우 많은 수의 묘를 벌초해야 된다. 그로 인해 보통 여러 가족들이 모여 직계조상님의 묘만 분담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과거에는 특정 성씨 집단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고, 보통 3대 이상이 함께 사는 대가족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벌초를 하는 것 자체는 크게 문제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가까운 친척이라 해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고, 핵가족화가 진행된 상태라 벌초 자체가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1980~1990년대 중반까지는 해당 지역에 남아있던 문중의 사람들이 벌초를 책임지고, 일가친척 들은 이에 대한 감사를 뜻하는 의미에서 벌초비를 주는 형태가 많았다. 하지만 이후로는 시골에 있던 분들도 대부분 늙으신 까닭에 돈으로 사람을 고용해서 벌초를 맡기는 쪽으로 변화하였다.
군산 지역은 토박이 성씨들이 많아 각 문중의 벌초 때는 집안의 일가친척들이 모이는 날이기도 하며, 멀리 사는 가족들은 벌초를 마치고 미리 성묘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