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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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鐵器時代 |
영어공식명칭 | Iron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선사/철기 |
집필자 | 노성태 |
[정의]
광주 지역에서 철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개설]
인류가 철을 이용하여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로부터 역사시대 이전까지의 시대로, 광주광역시 신창동 유적과 전라남도 해남 군곡리 패총이 대표적이다.
[특징]
청동으로 도구를 제작하는 첨단기술의 발전을 일구어내었던 청동기 문화는 기원전 300년을 전후하여 새로운 철기 문화를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좁은놋단검[세형동검] 등이 만들어지는 등 청동기도 함께 사용되었으나, 기원전 1세기경부터는 철기가 널리 보급되었다. 철은 주로 생활 도구와 무기를 만드는 데에 사용되었다. 이에, 철을 단단하게 담금질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철도 많이 생산되었다.
농기구로는 이전의 목기나 석기와 함께 삽, 괭이, 낫 같은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였다. 무기로는 칼, 창, 화살촉 등이 있었으며, 공구로는 끌, 톱, 도끼, 자귀 등이 있었다. 한편, 토기의 생산 기술도 발달하였으며,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의 토기가 만들어졌다.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면서 농업 기술이 발달하고 경작지의 개간도 쉬워져 농업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났고, 인구도 많이 늘어났다. 반면에, 부족 간에 서로 많은 식량을 차지하려고 다툼이 생겼고, 철제 무기를 전투에 사용하게 되면서 부족 간의 전쟁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에 따라 철을 잘 이용한 부족은 세력을 키워 국가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철기시대의 무덤으로는 널무덤[토광묘]과 독널무덤[옹관묘] 등이 있다. 널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널을 넣은 것으로, 한반도 서북 지역에서 먼저 만들어지다가 남부 지역으로 퍼져나갔는데, 특히 낙동강 유역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독널은 2개의 항아리를 옆으로 이어 만든 것으로 철기시대 전기에는 소형이었다가 점차 커졌는데, 영산강 유역에서는 독널을 매장한 대형의 독무덤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광주 지역의 철기시대 유적]
광주 지역의 대표적인 철기시대 유적은 광주 신창동 유적, 광주 수문 유적, 해남 군곡리 패총, 보성 벌교 금평 패총 등이 있다. 광주 수문 유적에서는 좁은놋단검, 해남 송지면 군곡리 패총에서는 각종 토기 및 철기를 비롯하여 중국 화폐인 화천(貨泉) 등이 출토되었다. 중국 왕만(王莽) 대에 사용된 화폐인 화천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해남 등 남도의 마한제국이 중국과 빈번하게 교역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철기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유적은 복합 농경 유적인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에 있는 광주 신창동 유적이다. 광주 신창동 유적은 1963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옹관 조사를 통해 처음 알려졌으며, 1992년 국도 제1호선 도로 개량공사가 진행되면서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긴급 조사를 시행하였다. 조사 결과 토기 가마, 도랑, 주거지, 밭 등이 확인되어 철기시대 생산 및 생활, 분묘가 결합된 대단위 복합 유적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다양한 유기물이 조사된 저습지 유적으로 학술·문화적인 중요성이 인정되어 1992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광주 신창동 유적의 저습지에서는 칼·활 등의 무기류, 괭이·낫·따비 등의 농기구, 통형칠기·절판 등의 각종 용기류, 발화구·신발골 등의 생활용품, 바디[베틀, 가마니틀, 방직기 따위에 딸린 기구의 하나]·실감대 등의 방직구, 수레바퀴통·가로걸이대 등의 수레 부속구, 현악기·북 등의 악기류, 문짝 등의 건축 부재와 같은 다양한 목기와 칠기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로 볼 때, 발달된 농업 생산과 칠기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한 철기시대 신창동의 마한 사람들은 아름다운 천으로 한껏 멋을 부리고, 고품격의 칠기를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면서 악기를 연주하고 현의 음률을 즐겼던 문화 집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