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504 |
---|---|
한자 | 龍山洞遺蹟 |
영어공식명칭 | Yongsan-dong Site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 375 |
시대 | 선사/청동기,선사/철기,고대/초기 국가 시대,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 |
집필자 | 이정민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5년 2월 14일~3월 4일 - 용산동 유적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지표조사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0년 5월 14일~7월 19일 - 용산동 유적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2년 12월 17일~2013년 6월 18일 - 용산동 유적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현 소재지 | 용산동 유적 - 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 375 일대 |
성격 | 터 |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위치]
광주광역시 용산동 유적은 광주광역시 시내의 남쪽 가장자리에 있으며, 무등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에 형성된 곡간 지형에 해당하고, 광주광역시 학동에서 전라남도 화순군 방향의 소태나들목 진입하기 바로 직전에 있는 오른쪽 구릉 너머이다.
[발굴조사 경위 및 결과]
광주광역시 용산동 유적은 광주광역시 용산도시개발사업지구 조성부지에 속해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5년 2월 14일부터 3월 4일까지 지표조사에 이어 2010년 5월 14일부터 7월 19일까지 시굴 조사와 2012년 12월 17일부터 2013년 6월 18일까지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용산 유적의 서쪽 곡간 산사면에서는 원삼국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집터 40기를 비롯한 구덩이[수혈(竪穴)], 구, 지상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고, 동쪽 곡간 저지대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경작유구를 중심으로 구, 구하천이 확인됨으로써 이곳에 하나의 취락을 형성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유물은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구하천에서 민무늬 토기편, 양날돌도끼, 조합식 쇠뿔손잡이편, 원형 덧띠토기편,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고, 원삼국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집터와 구덩이, 구, 경작유구에서는 발형토기, 달걀 모양의 토기, 이중구연토기[아가리 부분에 점토 띠를 덧붙인 토기.], 단경호, 두 귀 항아리, 시루, 돌살촉, 고려시대 가마에서는 연질 도기편과 경질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현황]
광주광역시 용산동 유적은 유구는 남아 있지 않으며, 출토된 유물은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소장 및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광주광역시 용산동 유적은 집터와 경작유구가 공간을 분할하여 공존하는 유적이다. 특히, 발굴 조사된 40여 기의 집터는 장방형의 네 개의 중심 기둥[사주식(四柱式)]이 자리잡히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출토된 유물의 중심 연대는 3세기 말부터 4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자연과학적 연대 분석을 통해 원삼국시대 초의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경작유구와 함께 광주 신창동 유적과 쌍촌동 유적의 사이를 메워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인근의 광주광역시 신창동 유적과 함께 광주광역시 일대의 농경문화뿐만 아니라 고환경을 구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 또한, 삼국시대의 집터 내에서 출토된 청동끌은 형태상 기원전 2세기대로 볼 수 있는데 장성 환교 유적에서 소형의 청동검이 출토된 사례와 함께 청동기시대와의 시간적 연결고리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