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4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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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壯烈詞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동문대로112번길 99[두암동 823-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효주 |
건립 시기/일시 | 1850년 - 장열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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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8년 - 장열사 훼철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7~1978년 - 장열사 사당과 내삼문, 화랑원 완공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06년 - 장열사 복원 |
현 소재지 | 장열사 - 광주광역시 북구 동문대로112번길 99[두암동 823-1] |
원소재지 | 장열사 -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 우곡마을 입구 대로변 |
성격 | 사우 |
양식 | 팔작지붕 다포집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김해김씨 |
관리자 | 김해김씨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에 있는 조선 후기 김해김씨 사당.
[개설]
장열사는 광주광역시 두암동에 자리한 김해김씨 사당으로 김유신(金庾信)[595~673]을 배향하고 있다. 1850년에 지역 유림들이 우치동 죽방촌에 사우를 건립하여 향사하다가 훼철된 이후 1906년에 복원되었다. 본래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 김일손(金馹孫)[1464~1498]과 인조 때 안주목사와 황주목사를 지낸 망헌(望軒) 김광립(金光立)도 함께 배향하고 있었으나, 김일손과 김광립은 두암사(斗巖祠)로 옮겨지고 현재는 김유신만을 배향하고 있다.
[위치]
광주광역시 북구 동문대로112번길 99[두암동 823-1]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1850년 지역 유림들이 우치동 죽방촌에 사우를 건립하여 향사해 오다가,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거되었으며, 1906년 복원하였다. 처음 장열사가 있었던 곳인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 우곡마을 입구 대로변에는 장렬사유적비만 남겨져 있는데 『광주읍지』에는 장렬사유허비로 기록되어 있다.
[형태]
장열사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다포집 형태 건물이다. 경내에 사당과 내삼문 화랑원(花郞院)이 함께 있다.
[현황]
1975년부터 사우(祠宇) 정화사업을 추진하여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사당과 내삼문, 화랑원을 완공하였고, 1981년 전라남도와 광주시 지원으로 오늘날의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해마다 음력 9월 20일에 김유신 장군의 공덕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문중과 지자체가 관리하여 사당과 기타 제각의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장열사 관리사무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문화해설사가 배치되어 김유신과 장열사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장열사는 김해김씨 문중에서 김유신을 배향한 사당으로 의의가 있으며, 장열사 정화사업으로 사당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서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