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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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文居 |
영어공식명칭 | Lee Munge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효선 |
출생 시기/일시 | 1879년 - 이문거 출생[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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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이문거 장흥경찰서 순사 근무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1월 5일 - 이문거 양상기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후군장으로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9월 20일 - 이문거 광주경찰서 순사대에 의해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10월 11일 - 이문거 광주군 재판소에서 폭동죄로 태 100도 선고받음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 이문거 대통령 표창 추서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장흥경찰서 순사|양상기 의병부대 후군장 |
[정의]
개항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항일 의병.
[개설]
이문거(李文居)는 1879년(고종 16) 출생으로 추정되며, 본적은 전라남도 광주군 석저면 평촌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석곡동 일대]이다. 양상기(梁相基)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후군장(後軍將)으로 활동하다 일본 순사대에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이문거는 1907년 음력 5월부터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경찰서에서 순사로 근무하였다. 1909년 1월 5일 양상기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후군장으로 활동하다 전라남도 광주군 석저면에서 1909년 9월 20일 광주경찰서 순사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1909년 10월 11일 광주군 재판소에서 폭동죄로 태(笞) 100도(度)를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2015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