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8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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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無等山-許百鍊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황민선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891년 - 허백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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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977년 - 허백련 사망 |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969년 - 허백련이 한시 「무등산」을 지음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한시 |
작가 | 허백련 |
[정의]
1969년 동양화가 허백련이 전라도 광주 지역의 무등산을 대상으로 쓴 한시.
[개설]
「무등산(無等山)」을 지은 허백련(許百鍊)[1891~1977]은 남종화(南宗畫)의 대가로, 본관은 양천(陽川), 호는 의재(毅齋)이다. 전라남도 진도 출생으로, 한시·서예·동양화에 능하였다. 어린 시절 진도에서 허련(許鍊)의 아들인 허형(許瀅)에게서 묵화의 기초를 익힌 후 신학문을 배우고자 1913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일본 화단의 활발한 움직임에 영향을 받은 허백련은 전문적으로 그림 공부를 결심하게 되었다. 도쿄에서 6년간 머무르며 일본의 대표적 남종화가(南宗畫家)였던 고무로 스이운[小室翠雲, 1874~1945]의 영향을 받아 정통 남종 산수화를 지향하게 되었다. 1918년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1922년 상경하여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전통적인 산수화를 출품하여 입상하면서 주목받게 되었다. 1927년 이후부터는 전라도 광주에 정착하여 독자적 화필 생활과 문하생 지도에 전념하였다. 1938년에는 전라도 광주에서 연진회(鍊眞會)를 발족하여 호남 지역 서화 전통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45년 광복 후에는 무등산다원(無等山茶園)을 인수하여 축산 농장을 경영하면서 그림 활동을 지속하였다. 1947년에는 농업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하였다. 194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시작되자 추천 작가와 초대 작가로 추대되었고, 심사위원을 지냈다. 1960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1962년 문화훈장 문화포장(文化褒章)을 받았다. 1966년에는 예술원상 미술 부문을 수상하였다.
「무등산」은 허백련의 시문을 모은 『근인당창화집(近仁堂唱和集)』에 실려 있다. 『근인당창화집』은 1991년 10월 5일 의재 허백련 화백 문하생 모임에서 허백련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이백순(李栢淳)의 해설을 붙여서 간행한 시문집이다.
[구성]
「무등산」은 1구에 7자씩 모두 4구로 이루어진 칠언절구이다.
[내용]
무등반비서색농(無等半飛瑞色瓏)[상서로운 빛 영롱하게 무등산에 나래 치고]/ 산용수괘동운중(山容秀掛洞雲中)[골짜기 구름 사이 산 모습 높이 걸렸네]/ 반등안계유유활(攀登眼界悠悠濶)[더위 잡아 오르니 눈앞에 아득히 트이고]/ 만목영자기세웅(萬木英姿氣勢雄)[온갖 나무 빼어난 자태 기세도 웅장하구나]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