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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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間-疏開 |
이칭/별칭 | 빨치산 토벌작전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동석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48년 - 빨치산 토벌작전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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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50년 - 빨치산 토벌작전 종결 |
발생|시작 장소 | 지리산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
성격 | 빨치산 토벌 작전 |
[정의]
해방 이후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빨치산의 거점과 식량보급 차단을 위해 실시한 군경의 빨치산 토벌작전.
[개설]
1948년 말부터 여순사건으로 인해 지리산으로 입산한 빨치산들이 함양군의 관공서를 공격하는 등 본격적인 빨치산 활동을 전개했다. 군과 경찰은 빨치산과 직접 전투를 벌이고, 빨치산의 거점과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지리산 산간마을 소개 작전을 펼쳤다. 군과 경찰은 작전지역이던 산간마을을 소개하기도 했지만, 통비분자 색출을 명분으로 마을 주민들을 연행하거나 취조하여 불법적으로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역사적 배경]
여순사건으로 14연대 군인들이 지리산으로 도피하여 빨치산으로 활동했고, 인민위원회 활동 등을 벌이다가 입산하는 경우도 있었다. 군인들이 빨치산 활동을 벌인 것은 단독정부 수립반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
[경과]
산간마을 소개와 민간인 사살이 발생한 장소는 함양군청 소재지에서 먼 거리에 있으며, 군·경찰의 치안유지가 취약한 곳이었다. 당시의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를 통해 산간마을 소개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기자는 (전북)남원군과 (경남)함양군에서 소개실태를 조사하였다. 전기 양군에 있어서 이미 소개된 홋수는 각기○○호에 소개인구는 ○○명에 달한다.…이것은 지난 7월경부터 시작되었는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는 이러한 소개민들이 산에서 찍어온 뭉글나무를 엮어 올려 간단한 움집을 짓고 있었다. 명년 봄이 되면 다시 살던 집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말을 유일의 희망으로…”(『동아일보』, 1949. 10. 24.) 라는 기사를 통해 소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사찰까지 불태워졌다. 한국 선불교 최고의 종가라 불리는 벽송사[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경내 입구에 이러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한국전쟁으로 시작된 지리산 빨치산들의 암약[당시 벽송사는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으로 말미암아 국군에 의해 방화되어 완전히 소실되는 슬픈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또한 지리산 고승들의 수행처인 영원사[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경내 비석에 새겨진 영원사 내력의 일부분에도 “여순반란과 육이오 동란 때 공비토벌작전 수행 중 아군에 의해 방화·소실 되어 쑥대밭에 빈 터만 남게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결과]
산간마을 소개작전은 1950년 초 빨치산 토벌작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지만, 제5회 임시국회에서 논란이 일어 작전 중지명령이 내려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