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404
한자 水東面-民間人虐殺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이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동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9년 9월 20일연표보기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도북마을 주민 17명을 당그래산에서 집단 학살
종결 시기/일시 1949년 9월 21일연표보기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치라골마을 주민 18명을 당그래산에서 집단 학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2년 1월 18일 - 수동면 도북·치라골 민간인 학살 사건의 합동묘역 조성 및 위령비 제막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6년 2월 10일 - 수동면 도북·치라골 민간인 학살 사건 기념비 건립
발생|시작 장소 당그래산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이은리 지도보기
종결 장소 당그래산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이은리 지도보기
성격 민간인 학살 사건

[정의]

1949년 9월 21일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서 빨치산 토벌 과정 중 군경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

[역사적 배경]

여순사건 이후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와 경찰이 군사작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희생당했다.

[경과]

함양군 수동면 도북마을의 뒤편 산 너머에 있는 덕갈산[668m]은 한국전쟁 이전부터 빨치산들이 활동하던, 지리산·감악산과 연결되는 주요 통로였다. 이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빨치산과 경찰로부터 동시에 고초를 당했다.

1949년 9월 20일[음력 7월 28일] 마을 주민들이 자체 경비 중이었는데, 마을에서 이발사로 일하던 정주상[당시 23세]이 보따리를 들고 마을을 빠져나가는 것을 수상하게 여겨 붙잡아 수동지서로 인계했다. 경찰은 정주상의 이발 외상장부에 적혀 있는 주민들이 빨치산에 협력했다고 하여 주민 35명을 군부대로 넘겼다. 군인들은 주민들을 고문하고, 함양군 함양읍 이은리 당그래산으로 끌고 가서 총살하였다. 또한 군경들은 마을 주민들을 아랫마을[하교]로 강제 이주시키고, 입산하여 빨치산이 된 세 사람의 집을 불태워 버렸다.

1949년 9월 21일에도 민간인 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덕갈산 아래 계곡에 위치한 치라골마을에서는 빨치산들이 식량 등을 주민에게 요구하는 일이 잦았고, 경찰은 신고를 강권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9년 9월 19일 오전 5시경 빨치산에게 가축과 곡식을 빼앗기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동지서 최홍식이 마을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임정택 등 18명을 연행했다. 그리고 인근 도북마을 주민들이 학살당한 다음 날 9월 21일에 동일한 장소인 당그래산에서 군인들에 의해 총살당했다. 민간인 집단 학살 후에 경찰은 마을 주민들을 아랫마을인 용수막으로 소개시키고 마을을 불질렀다.

[결과]

주민들은 경찰의 저지로 학살당한 사람들의 시신도 수습하지 못했다. 1991년 12월이 되어서야 겨우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이듬해 1992년 1월 18일 함양군 수동면 도북마을 건너편에 합동묘역을 조성하고 위령비를 제막(除幕)했다. 1996년 2월 10일에는 학살 현장인 당그래산에 수동면 도북·치라골 사건의 참상을 알리는 비석을 세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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