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709 |
---|---|
한자 | 大坪當村里堂祭 |
이칭/별칭 | 사평당산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당촌리 |
집필자 | 편세영 |
성격 | 당제 |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당촌리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당촌리의 당제.
[개설]
1963년 황씨 할머니(73세)에게 들은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마을사람으로 구성하는 당제계(堂祭契)가 있고 마을마다 제례위원이 구성되어 있어 모든 행사를 진행했다. 당제의 관리 운영을 목적으로 계원은 1년에 쌀 3되를 낸다.
[명칭유래]
대평면은 예부터 농경문화의 중심지 BC 1~3세기 전부터 농경문화가 형성된 곳으로 전한다. 그래서 윗마을을 상촌, 아래 마을을 하촌, 가운데 있는 마을 중촌이라 하였는데 당제가 있다고 하여 당촌이라 불렸다.
[위치]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당촌리 중촌에 있었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음력 정월 보름날 새벽에 마을 대표가 당재에 모여 농사가 잘 되고 돌림병 없이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제례를 올렸다. 제물 음식은 분가하여 첫 살림을 차린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선택하여 마련하게 한다. 제기(祭器)는 주최 측에서 매년 새로운 것으로 마련하되 제례가 끝나면 음식을 마련한 집에 준다고 한다. 단 상주, 임신, 병환 등 불길한 자는 참여가 불가능하다, 제례음식 준비를 위해 시장에 가더라도 외상, 물건가격 깎기를 금하였다고 하며 남과의 만남, 부부관계 등을 제한했다고 한다. 생선이나 육류는 쓰지 않고 통돼지를 제물로 썼다.
제례가 끝나면 물 관리와 두레품앗이, 무종자씨 등 금년 농사일을 의논하여 결정하며 마을에 돌아가 전하고 낮에 함께 모여 소싸움, 돌팔매질, 놀이사합으로 승부를 가리고 함께 즐겼다.
[현황]
1962년 남강댐 공사로 완전 수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