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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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飛鳳樓 |
영어음역 | Bibongnu Pavilio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887-1[창렬로 205-17]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유나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3년 4월 17일 - 진주 비봉루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29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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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진주 비봉루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성격 | 누각 |
양식 | 익공양식[3익공계 공포형식] |
건립시기/연도 | 일제강점기|1939년 |
관련인물 | 정몽주|정상진|정명수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층수 | 1층 |
면적 | 1,190㎡[지정면적]|42.95㎡[건물면적]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887-1[창렬로 205-17] |
소유자 | 정인화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의 비봉산에 있는 누각.
[명칭유래]
비봉산 아래에 위치하여 비봉루라는 명칭이 붙여졌을 것이라는 추측 뿐 별 다른 명칭유래는 없다.
[건립경위]
진주 비봉루는 고려 말의 충신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장구지소(杖求之所: 지팡이와 짚신을 놓아두었던 곳)여서 정몽주의 후손인 정상진이 1939년에 누각을 지은 것이다.
[위치]
진주 비봉루는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887-1[창렬로 205-17]에 있는 비봉산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다.
[변천]
추사체의 맥을 이은 진주지역의 서예가인 정명수가 서실로 운영하다가, 현재는 정명수의 후손이 서실에서 다실(茶室)로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다.
[형태]
팔작지붕과 겹처마 오량가로 구성되었으며, 누하주는 장초석으로 8각으로 위에 비스듬히 가공하였고, 익공(翼工) 양식 중에서도 3익공계 공포형식을 하고 있는데 출목이 있다. 충량은 대들보 위에 얹혀 있으며 머리에는 용두장식을 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사방에 계자난간을 두르고 외부에 유리창을 부착하였으며, 누각이나 누하주는 짧은 형태이다. 대청과 방 2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방의 구조는 한옥과 근대식의 절충형으로 겹집평면과 부속공간이 다양한 형태로 섞여 있다.
[현황]
현재 소유자이며 관리자인 정인화가 다실로 운영하고 있으며, 2003년 4월 17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2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진주시의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로서 진주 비봉루에서 바라보는 진주 시가지 전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