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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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宣朝賜祭文碑 |
영어음역 | Jinju Sangdae-dong Seonjosajemunbi |
영어의미역 | Stone Monument with the Inscription of King Seonjo's Prayer in Sangdae-dong, Jinju |
이칭/별칭 | 최영경 사제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 592[선학산길13번길 17-1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영숙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2년 8월 14일 - 진주 선조사제문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78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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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진주 선조사제문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성격 | 비 |
건립시기/연도 | 1821년 |
관련인물 | 최영경(崔永慶) |
너비 | 70㎝ |
비신두께 | 20㎝ |
높이 | 172㎝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 592[선학산길13번길 17-13] |
소유자 | 화순최씨 수우당공파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최영경(崔永慶)의 사제비(賜祭碑).
[건립경위]
수우당(守愚堂) 최영경[1529~1590]은 정여립 옥사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옥사한 다음 해인 1591년(선조 24)에 그가 무죄였음이 판명되자, 1594년 선조가 최영경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제문을 내려주었다. 1821년(순조 21) 이 제문을 돌에 새겨 비석을 세웠다.
원래 1821년 당시 남명(南冥) 조식(曺植)에 내려진 정조사제문비와 함께 산청의 덕천서원(德川書院)에 세워졌다. 1902년까지 덕천서원 마당에는 남명 조식의 정조사제문비와 수우당 최영경의 선조사제문비가 각각 동쪽과 서쪽에 있었다고 한다.
[위치]
현재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에 있는 도강서당(道江書堂)으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으며, 도강서원 동쪽 처마 끝에서 동남쪽으로 3m 떨어진 곳에 남향으로 서 있다.
[형태]
규모는 가로 70㎝, 세로 172㎝, 두께 20㎝이다. 비좌는 장방형으로 대부분이 땅에 묻혀 있으며, 지붕돌[가첨석]은 팔작지붕 형태로 조각되어 있다.
[금석문]
비신의 석질이 특히 약하여, 두전(頭篆) 일부분과 하단(下端) 일부분은 이미 풍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이다. 두전(頭篆)과 본문의 해서(楷書)를 쓴 사람 및 글씨를 새긴 사람 등의 이름은 비석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현황]
비석의 1m 앞에는 최근에 세운 높이 5m가량의 신도비(神道碑)가 서 있다. 2002년 8월 14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7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19세기 초에 이르러서 역신으로 지목되어 몰락했던 정인홍(鄭仁弘)과 영남사림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영남사림의 문풍이 중흥하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왕이 직접 제문을 내리고 제문을 비로 세운 일이 드물기 때문에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