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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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歡堂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관수 |
[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강위의 시문집.
[개설]
조선 후기의 한학자이자 개화사상가인 강위(姜瑋)[1820~1884]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복정리 출생으로, 본관은 진주, 자는 중무(仲武)·위옥(葦玉)·요장(堯章), 호는 추금(秋琴)·자기(慈屺)·청추각(聽秋閣)·고환당(古懽堂)이다. 무반집안의 출신으로 신분상의 제약 때문에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과 문학에 전념하였다.
민노행(閔魯行) 문하에서 4년간 경학을 배웠고 스승이 죽자 제주도의 유배중인 김정희를 찾아가 3년간 지도를 받았다. 김정희의 유배가 풀리자 전국을 방랑하며 개성이 뚜렷하고 관습적 표현을 배제한 참신한 시를 지어 김택영, 황현과 함께 구한말의 3대 시인으로 불렸다. 경학과 금석문의 학문적인 한계성을 탈피하여 불교와 음양법 등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고, 특히 서양 학문의 실용주의적 태도에 자극을 받아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한 태도는 개화사상으로 자리하였다.
[편찬/발간경위]
1883년(고종 20)에 간행된 강위의 시집 『고환당수초』 17권 3책에 문집 4권 2책을 합본한 책으로 『추금집』이라고도 한다. 당대의 석학 이건창(李建昌)이 교정하고 정만조(鄭萬朝)가 편집하였다.
이 책은 1978년 서울아세아문화사에서 21권 5책으로 간행하였으며, 한국문헌연구소에서 『한국근대사상총서』를 엮어낼 때 『고환당수초』와 함께 『강위전집』 상·하 2권으로 영인하여 1978년 5월 간행한 바 있다.
[서지적 상황]
국내의 명승고적과 군현의 풍속·실정 등을 돌아보면서 지은 것과 청나라, 일본 등을 여행하면서 지은 17권이 시집과 4권의 문집으로 구성되어있다. 강위는 1880년 수신사(修信使) 김홍집(金弘集)을 수행하는 서기로서, 1882년 김옥균 등의 개화파 일행과 동행하여 일본에 다녀온 바 있다.
[형태]
『고환당집』은 21권 5책이며, 크기는 가로 17.2㎝, 세로 21㎝이다.
[구성/내용]
권두에 1899년 정건조(鄭健朝)가 쓴 서문, 1883년에 이건창(李建昌)이 쓴 서문, 그리고 자서(自序)가 있다.
권1에는 「연상집(聯床集)」이라고 하여 9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부친의 61세 생신을 맞아 쓴 것, 울산에 백씨를 모시고 갔을 때 일을 적은 것 등이 실려 있다. 권2에는 「발미여초(發弭餘草)」라는 제목 아래 127수의 시가 실려 있는데, 제주도에서 친구 정건조에게 자신의 심경을 그린 것, 완당 김정희의 작품을 차운(次韻)해 지은 것 등 지인들과 관련된 작품들이 있다. 또한 그의 방랑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은데, 실제로 금강산, 삼척, 경주, 지리산, 그리고 경상남도 주변을 방랑하면서 보고 듣거나 느낀 것들을 그리고 있다.
권3에는 「서소집(西笑集)」이라는 제목 아래 36수의 시가 실려 있는데, 주로 완당 김정희, 이건필(李建弼), 이근수(李根洙),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 신헌(申櫶), 정범조 등 지인들과 교류하면서 수창한 작품들이다. 권4~5에는 「금회창수집(錦回唱酬集)」, 「금회방구초시(錦回訪舊草詩)」라고 하여 자신의 거처인 금회에서 벗들과 주고받은 작품들이다. 권6에는 「삼동수승초(三洞搜勝艸)」라고 하여 금산사, 위봉산성, 완주 등 전라도 지역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이 실려 있다. 권7에는 「유양만상집(柳洋漫賞集)」이라고 하여 「촉석루」, 「강한루」 등 경상남도 지역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이 실려 있다. 권8에는 「동루연상집(東樓聯賞集)」이라고 하여 북고사(北固寺)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실려 있는데, 대체로 여름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다. 권9에는 「하장결하집(霞莊結夏集)」이라고 하여 경기도 영평(永平) 등지를 소재로 한 작품, 「잡흥(雜興)」이라고 하여 15수로 이루어진 연작시가 눈에 띄는데, 여기서 그는 부평초처럼 이리저리 떠도는 자신의 신세를 푸념 섞인 투로 읊어내고 있다. 권10에는 「남촌신석집(南村晨夕集)」이라고 하여 1876년 12월에 홍승헌(洪承憲)의 집에서 여러 지인들과 수창한 작품 등이 실려 있다. 권11에는 「육교연금집(六橋聯唫集)」이라고 하여 해당루(海棠樓)라는 곳에서 여러 벗들과 수창한 작품들이 많이 실려 있다.
권12에는 「북유초(北遊艸)」라고 하여 동선령(洞仙嶺), 통군정, 책문, 만리장성, 산해관 등 대사관 참찬으로 중국에 갈 때 들른 곳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실려 있어, 그의 개화사상과 관련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권13에는 「북유속초록(北游續草錄)」이라고 하여 역시 중국에 갈 때 지나간 관서 지방, 중국의 여러 지역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태반이다. 역시 「북유초」와 마찬가지로 그의 개화적 삶과 관련하여 의론할 때 매우 중요한 작품들이라고 하겠다. 권14~15에는 각각 「동유초(東游草)」, 「동유속초(東游續草)」라고 하여 경상도, 부산을 거쳐 일본의 나가사키, 고베, 오사카 등을 지나면서 쓴 작품들로 역시 그의 개화사상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듯하다. 권16에는 「원유초(遠游艸)」라고 하여 일본에서 귀국하면서 겪을 일들을 주로 그리고 있다. 권17에는 「시여(詩餘)」라고 하여 주로 증별시들이 실려 있다.
산문으로는 서(序) 10편, 기(記) 3편, 설(說) 1편, 송(頌) 1편, 논(論) 2편, 의(議) 1편, 서(書) 3편, 유(諭) 1편, 모화문(募化文) 3편, 상량문 3편, 축문 2편, 제문 3편, 비(碑) 5편, 묘표 6편, 장(狀) 1편, 보유(補遺) 2편 등이 실려 있다.
그 가운데 「의삼정구폐책(擬三政捄弊策)」은 전부(田賦), 군적(軍籍), 환곡(還穀)에 대한 의론이다. 「북유일기(北遊日記)」는 1873년(고종 10년) 10월 24일 동지사 겸 사은사(冬至使兼謝恩使) 정건조의 권유에 따라 베이징[北京]에 갔다가 이듬해 3월 30일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의 기록이다. 「북유담초(北遊談艸)」는 1874년 봄에 정건조와 청나라 형부주사와의 문답을, 「북유속담초(北遊續談艸)」는 1875년 봄에 동지사 서장관 이건창을 수행한 강위와 청나라 관리와의 문답을 기록한 것이다. 주로 당시의 국제 정세와 이에 대한 조선의 대책 등에 관해 논의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그의 시는 개화기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고, 또한 그의 전부, 군적, 환곡에 대한 정책적 태도 등은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을 수 있을 듯하다.